4세기 후반 로마제국 서부의 정치적 변동과 이교 문제: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시기‘승리의 제단 사건’
The Altar of Victory Affair under the Valentinian Dynasty: Paganism and Political Upheaval in the Roman Westof the Late 4th Century
- 주제(키워드) The Valentinian Dynasty , Gratianus , Quintus Aurelius Symmachus , The Christianisation of the Roman Empire , The Altar of Victory Affair ,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 그라티아누스 , 심마쿠스 , 로마제국의 기독교화 , 승리의 제단 사건
- 발행기관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 발행년도 2024
- 총서유형 Journal
- DOI http://dx.doi.org/10.20975/jcskor.2024..71.285
- KCI ID ART003163147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4세기 후반 로마제국 서부의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치세 말에 전개한 이교(異敎, paganism) 억압 정책은 테오도시우스 1세의 종교 정책과 함께 로마제국 기독교화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어왔다. 382년 말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승리의 제단(Ara Victoriae)을 철거했을 뿐만 아니라, 공화정기부터 이어져 온 공식숭배(sacra publica)의 특권을 철폐했다. 이러한 조치를 두고 궁정과 원로원, 교회가 전개한 ‘승리의 제단 사건’(Altar of Victory Affair)은 기독교와 이교 간 종교 대립의 전형적 사례로 해석되어왔다. 하지만 본 논문은 승리의 제단 사건이 로마제국 지배층의 기독교화 과정은 물론, 4세기 후반 로마제국의 정치적 격변 중에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이 사건과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시기 제국 서부에서 전개된 파벌 정치 및 권력 재편 간의 공시적 관계를 검토한다. 승리의 제단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은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시기 제국 서부 지배층 내부의 파벌 대립과 세력 재편이었다. 그라티아누스 친정 초부터 갈리아 지주 귀족 중심의 아우소니우스파(Ausonii)는 심마쿠스를 비롯한 로마 이교도 명문 귀족들과 함께 국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370년대 말 고트족의 침입에 따라 권력의 중심이 북부 이탈리아로 이동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정치적 영향력을 키운 아니키우스·프로부스파(Anicii Probi)와 관료 출신의 기독교도 신흥 귀족들은 이교도 명문 귀족들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위신을 상징했던 전통적인 정치문화를 새롭게 대체하고자 했다. 이에 그들은 382년 말 승리의 제단 철거와 공식숭배에 대한 공적 지원 철폐를 궁정에 탄원했다. 이러한 시도는 아우소니우스파가 사라진 궁정에서 실권을 행사한 권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했고, 실제 조치로 시행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384년 심마쿠스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 선제의 공식숭배 억압 조치를 철회에 달라고 탄원서를 올렸다. 앞의 정치적 맥락을 고려할 때 단순히 이교적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기독교도들에 맞서는 것은 심마쿠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심마쿠스는 황제권과 명문 귀족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했던 공식숭배를 매개로 궁정으로부터 정치적 지위를 다시금 확실하게 보장받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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