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류성룡 지향과 의의
Jeong Yak-yong’s admiration for Ryu Seong-ryong
- 주제(키워드) 류성룡 , 다산 정약용 , 『여유당전서』 , 「산성설(山城說)」 , 「전수기의(戰守機宜)」 , Seoae Ryu Seong-ryong , Dasan Jeong Yak-yong , Seoaejip , Jingbirok , Yeoyudang jeonseo , Sanseongseol (山城說) , Jeonsugiui (戰守機宜).
- 발행기관 서애학회
- 발행년도 2023
- 총서유형 Journal
- DOI http://dx.doi.org/10.23244/seoae.2023.7..004
- KCI ID ART003043052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이 논문은 실학의 대가로 불리는 정약용이 류성룡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대한 분석이다. ‘뒤에 반드시 내 말을 옳게 여길 자가 있을 것이요, 지금의 군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 슬프다’는 류성룡의 토로에 가장 공명하고 계승에 나선 인물이 200여 년 후 다산 정약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산성설(山城說」 과 「전수기의(戰守機宜)」 등을 원용한 정약용의 수원 화성(華城) 축성 활동에는 류성룡의 이 탄식과 희망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공명을 기초로 한 이러한 의지와 노력은 공공의 성찰에 해당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면서 역사를 변화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인간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하나로 엮는 시간 의식을 형성하게 하면서 사회를 진전하게 하는 동력인 것이다. 류성룡과 류성룡의 시대를 탐구하면서 정약용은 자신과 자기 시대를 성찰하기도 하고, 자신과 자기 시대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류성룡과 류성룡의 시대를 성찰하였다. 정약용의 이러한 조망과 동향은 단순한 동정이나 회고가 아니었다. 살펴본 대로 개인의 호사 취향도 아니고, 정약용의 시선과 탐색에는 과장과 분식(粉飾)이 없으며, 근거 없는 칭양도 없다. 정약용은 자기 시대의 비리와 모순을 끝까지 회피하지 않고 국가와 백성을 걱정하며 그 대책을 강구하였던 시대의 양심이었고, 류성룡은 조선뿐만 아니라일본과 명의 운명을 저변에서부터 뒤흔든 격변의 7년 전쟁에서 그 극복에 가장큰 책임의식으로 분발하여 마침내 조선의 존속에 기여하고, 태연하게 초야로돌아간 인물이다. 이러한 국가 공공의 인물들을 혹 당쟁이나 당색의 선입관으로 바라본다면 곤란하다. 오히려 실상을 왜곡하여 역사 해석과 활용에서 멍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우리는 앞으로 정약용의 류성룡 텍스트를 류성룡과 정약용 연구를 종합하고 그 전모에 관련시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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