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李白 시의 次韻과 轉用 –「尋陽紫極宮感秋作」의 경우–
Rhyme-Matching and Adaptation of Li Bai(李白)’s Poetry in the Joseon Dynasty : A Case Study of “The Feeling of Autumn at Xunyang Taoist Temple(尋陽紫極宮感秋作)”
- 주제(키워드) Joseon Dynasty , Li Bai(李白) , “The Feeling of Autumn at Xunyang Taoist Temple(尋陽紫極宮感秋作)” , Rhyme-Matching Poems(次韻詩) , Adaptation(轉用) , 조선시대 , 이백 , 「尋陽紫極宮感秋作」 , 次韻詩 , 轉用 , 신숙주 , 이황 , 송시열 , 김조순 , 박성양
- 발행기관 근역한문학회
- 발행년도 2025
- 총서유형 Journal
- KCI ID ART003181971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이 글은 한국에서의 이백 시 수용 연구의 일환으로 조선시대 「尋陽紫極宮感秋作」의 특수한 轉用 맥락을 究明하는 데 목적이 있다. 「尋陽紫極宮感秋作」은 조선시대 시인들이 이백 시중 가장 많이 차운했던 작품이다. 조선시대 이백 시는 주로 『分類補注李太白詩』를 통해 수용되었지만, 「尋陽紫極宮感秋作」에 대한 차운은 『詩林廣記』에 수록된 蘇軾의 차운시로부터 촉발되었다. 申叔舟로부터 시작된 조선시대 차운시들은 李滉에 의해 성리학적 주제의식으로 변화되어 그의 제자들과 학파 구성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 宋時烈은 門徒들과 함께 차운시를 酬唱하며 집권 남인세력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으며, 金祖淳은 『弘齋全書』 편찬에 참여한 名士들과의 同類意識을 다지기 위해 차운시를 활용했다. 또 朴性陽은 49수 연작 차운시에 이백 시와 변별되는 새로운 주제와 내용을 담았다. 조선시대 이백 시 차운은 시적 典範이 수용된 뒤 원래의 전범이 사라지고 학맥과 당파의 스승이 전범을 代置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차운작에선 원시의 도가적 은일 지향이 성리학적 실천 명제와 西人‧老論系의 정치적 입장으로 대치되었다. 조선시대 이백 차운시의 변화와 轉用 양상들은 한국 한시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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