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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社會燈」의 형식적 특징과 그 의미

The Formal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Sahoedeung in Daehanmaeilsinbo

초록/요약

1909년 11월 17일부터 1910년 5월 24일까지 약 7달 동안 2면 하단에 기재된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社會燈」은 계몽가사로 분류되거나, 『대한매일신보』 계몽가사는 사회등가사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회등」은 가사의 정형적 율격에서 벗어나 산문적 진술을 혼용하였다. 또 「사회등」은 실제 대상과 사건을 각 연에 나열하면서 비판적 어조의 단평을 남기는 등의 비문학적 요소를 첨가하였다. 이로 보아 「사회등」이 곧 가사라거나, 『대한매일신보』의 계몽가사를 사회등가사로 칭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산문적 진술을 혼용하고, 각 연에 실제 사건을 제시하여 논평하는 형식은 『황성신문』, 『만세보』 등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활용할 정도로 보편적이었으며, 시사단평·시사평론 등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대한매일신보』의 경우에는 해당 형식이 「秋夜閒談」(1906.11.07.)에서부터 체계화되며, 이후 국문판에서는 ‘시ᄉᆞ평론’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계몽 담론이 확산되자 『대한매일신보』 편집진은 계몽의 구호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1907년 말부터 율격을 갖춘 계몽가사 형식을 정립시키고자 하였고(「聞一知十」), 그 결과로 「사회등」 이전에 게재된 계몽가사에는 주체적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근대지식인의 국민 계몽 의지가 투영되었다. 동시에 구체적 사건을 제시하고 평론하는 비중은 감소하여, 세상의 다양한 일을 논평한다는 목적과는 점차 멀어졌다. 이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단평의 영역을 맡던 부분, 곧 ‘시ᄉᆞ평론’이라는 취지가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회등」은 등잔을 들고 복잡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운문·산문적 진술을 가리지 않으면서, 각 연에 실제 사건 및 인물을 제시하고 논평하였다. 즉 「사회등」은 『대한매일신보』 내 시사평론이라는 서술 관습을 재구하면서, 단평의 영역을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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