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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연간(1776-1800) 백자 연구의 諸문제

Issues of researches on white porcelain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1776-1800)

초록/요약

본 논문은 정조 연간 조선백자 연구의 쟁점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도자관과 도자정책, 편년작 등으로 나누어 선행연구와 문헌사료, 발굴자료, 양식분석 등을 통해 고찰하였다. 먼저 도자관의 경우 정조는 유교성리학의 근본에 맞게 백자 장식은 검박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박제가와 이희경은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선진 도자 제작기술 도입과 장인 관리와 생산 등에 관련한 제도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개혁에 앞장서기에는 자체 제작기술이 없었고 이미 기득권층에 올라 언사에 그친 것으로 보았다. 다음 정조의 청화백자와 갑번 금지 정책의 이유를 군신이 동일한 그릇을 쓸 수 없다는 신분 계급에 대한 인식과 분원을 둘러싼 여러 폐단, 특히 백토 굴토에 따른 적폐를 해결하고 갑작스런 별번에도 쉽게 대응하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되 그 대상을 첫 번째 이유와 연관된 갑기와 화기 금지로 실행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사치풍조의 만연과 지속적인 사번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등에서 보이는 화려한 그릇 사용은 정조의 왕권강화의 의도를 보여주지만 정책의 성공을 위한 모범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정조 연간 명문 자료와 출토 자료 중 첫 번째로 ‘丙申’명 청화백자각병은 정조 즉위년을 기념하여 별번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고, 동정추월과 산시청람의 문양이 일부 도식화되었으나 팔각 기형과 유색 등으로 보아 1776년작으로 추정하였다. 다음 ‘무신경수궁二’명 청화백자국화괴석문호는 ‘二’라는 명문이 약재의 품질 상하를 지칭하는 글자임을 새로 밝히고 이를 추가하는 시기를 정조 20년(1796) 이후로 상정하였고, 유태의 질과 국화와 괴석의 도식적 표현 등을 고려하여 무신년을 1848년으로 추정하였다. 끝으로 화유옹주와 원빈홍씨묘 출토품의 구성을 분석하여 당시 중국과 일본 수입자기 유입과 수요층의 기호 등을 논의하였다. 반면 문효세자와 정조 초장지 출토 명기는 순수한 분원산 백자로 『국조오례의』를 따르고자 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순조 태호와 정조의 초장지 항아리 기형은 정조 연간 양식 고찰에 기준이 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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