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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15世紀 磁器製 注子 硏究

A Study on Porcelain Ewer of the 15th Century Joseon Dynasty

초록/요약

본 논문는 조선 15세기의 자기제 주자를 중심으로, 그 조형적 특징과 제작 양상, 그리고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자기제 주자는 조선 15세기 초부터 새로운 조형을 보이며 제작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형태와 재질로 제작되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제작된 자기제 주자는 고려 말의 상감청자 제작전통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기형과 장식 조형을 보이고 있다. 조선 15세기 초 새로운 기형과 장식적 변화가 확인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기 기종 중 하나로, 차와 술을 담고 따르는 실용적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의례 및 제사에 사용된 祭器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현재까지는 자료 부족으로 인하여 이 시기 자기제 주자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변화되어 제작된 자기제 주자에 대하여 조선 15세기 중심으로 그 조형 변화의 배경과 유적출토 현황, 조형 특징, 시기별 제작 양상 등을 자세히 고찰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었다. ‘注子’는 술, 차와 같은 액체를 담아 따르기 위해 제작된 기물로, 일반적으로 동체에 주구를 부착하고 손잡이를 마련하여 사용이 편리하도록 설계된 기종이다. 본 연구는 15세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및 백자 주자를 중심으로, 주자의 조형적 특징과 변화 과정을 고찰하였다. 주자의 명칭과 용례를 분석한 결과, “주자”라는 명칭보다 중심 동체를 이루는 기형을 지칭하는 단어에 그 기능과 용도를 나타내는 말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주자는 술과 차의 사용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물임을 볼 수 있다. 특히, 15세기에는 국가 의례로서 “五禮”가 정비되었고, 󰡔世宗實錄󰡕 「五禮」와 『國朝五禮儀』와 같은 의례서가 15세기에 편찬되어 이후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의례의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의례서에는 가례와 빈례 등에 사용된 金鳳瓶, 金帶瓶 등의 주자형 기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같이 국가의례에 사용된 주자의 용례와 명칭을 확인되며, 금봉병 외에도 제사에서 술을 따르고 올리기 위해 주자가 사용되었음을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하였다. 또한, 손잡이가 없는 주구호 형태로 제작된 圜壺와 方壺 등의 기물도 주기로 향사례나 향음주례와 같은 의례에서 사용된 예가 확인된다. 상파형 손잡이가 부착된 다관은 조선 후기 의궤에서 확인되는 형태로, 주전자와 유사한 조형을 보인다. 이는 액체를 달이거나 데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銚’라는 명칭이 주전자와 연관되어 사용되었다는 점을 통해 조선 15세기에는 술을 달이거나, 차를 煎茶·煮茶의 방식으로 음용하기 위한 그릇로서 주자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자의 다양한 명칭은 그 기능에 따라 의례용, 제기용, 주기용, 다기용 등으로 세분화되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양하게 제시된 주자의 명칭과 용례를 바탕으로 조선 15세기 주자의 조형 변화에 대해 술문화와 차문화의 변화가 요인이되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15세기에는 술의 사용이 점차 증가하며 다양한 주종이 등장하였고, 특히 증류주의 음용이 크게 확대된 시기였다. 1430년대부터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소주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소주와 관련된 새로운 주자 형태가 등장하였다. 이는 높은 도수의 술이 보편화되면서 음주 용량 감소와 관련된 실용적 변화로 해석된다. 고려 14세기에 제작된 병형 주자가 대개 높이 25~30㎝의 크기를 갖춘 반면, 조선 15세기에는 복부의 부피가 줄어든 납작한 편병으로 제작되거나 소형화된 주자가 제작되어 이러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차문화의 변화 역시 주자의 조형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았다. 고려 시대의 點茶法은 조선 에 들어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煎茶法과 煮茶法의 차 음용법이 주를 이루었다. 문헌과 시문 자료를 통해 작설차와 같은 산차의 사용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명대 초기 산차 음용의 확대가 조선의 차문화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 명 사신과의 교류를 통해 다례가 빈번히 시행되었으며, 사신 교류 과정에서 다기와 관련된 예물이 오가고, 사신의 요청 품목에 다기가 포함된 점도 확인되어 참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주기나 다기 기종이 자기제로 제작된 것은 조선 15세기 금속기 규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고급 주기인 병형 주자는 금은 기종으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1410~20년대 극심한 금속 재료 부족으로 인해 왕실에서 금은기를 대체하여 자기제로 제작된 사례가 확인된다. 의례와 제기를 포함한 기물의 수요 증가는 전례서 편찬과 의례 준거 마련과 맞물려 있었으며, 금속 재료 부족 상황에서 일부 기물이 자기제로 대체 제작되었다. 예를 들어, 문헌기록을 통해 탕관·다관의 형태로 추정되는 ‘두고리’와 같은 기물이 자기제로 제작되었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결론적으로, 조선 15세기 주자는 술문화와 차문화의 변화, 금속기 규제, 국가 의례 정비와 같은 사회적·문화적 요인에 의해 조형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조선 15세기 자기제 주자에 대해 유형분류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각 유형의 특징과 성격을 파악하여 제시하였다. 자기제 주자의 유형을 분류하기 위해 1차적으로 동체 기형을 기준으로 Ⅰ형 병형 주자, Ⅱ형 원통형 소주자, Ⅲ형 원호형 주자로 구분하였다. 이어서 각 유형의 세부 동체 형태를 2차 기준으로, 주구의 형태를 3차 기준으로 삼아 세분화하여 특징을 살펴보았다. 또한 각 유형로 확인되는 조형적 특징과 유적 출토 현황을 종합하여 보면, 이들은 각각 다른 조형적 특징을 지니며, 중심 제작 시기에도 서로 다른 양상이 확인되었다. 전반적으로 자기제 주자는 한반도 서쪽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양상을 보였다. Ⅰ형 병형 주자는 주로 의례용 고급 기물로 사용되었다. 특히 Ⅰ-1형 편병형 주자는 15세기 초에만 제작되었으며, 용두형 주구를 부착한 경우는 명대 행엽집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명의 번국에 대한 하사품이나 외교 교류를 통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금속기 규제가 극심했던 시기에 자기제로 제작된 예로 파악된다. 반면, Ⅰ-2형 병형 주자는 15세기 후반에 일부 관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Ⅱ형 원통형 소주자는 소형 크기와 실용성을 특징으로 하며, 쌍이잔과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아 주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창 용산리 요지에서 출토된 사례는 소주고리가 분청사기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어, 소주의 보급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높은 도수의 소주를 담아 따르기 위해 소형 주자가 필요했음을 반영한 사례이다. Ⅲ형 원호형 주자는 평저형 구조로 차를 달이거나 데우는 용도의 다관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흑유로 제작된 예가 많으며,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먼저 제작되었다. Ⅲ-2형 주구호는 손잡이가 없거나 양이형 손잡이를 부착한 형태로, 주로 충청도와 경기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귀얄, 철화, 덤벙, 백자 등의 다양한 제작 기법이 적용되었으며, 이 유형은 주로 대사례, 향사례, 향음주례 등의 의례와 관련된 기물로 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더해 각 조형의 연원에 관련하여 살펴보며 조선 15세기의 자기제 주자의 다양한 조형 변화의 의미를 살폈다. 조선 15세기에 특징적으로 확인되는 주자 유형에서 용두형 또는 동물머리형 주구 장식은 주기의 성격을 강조하거나 불교적 의미와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형은 명대 주기 조형과 조선 초 북방자기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Ⅰ-1-b형 용두형 주구를 부착한 편병형 주자는 중국의 행엽집호와 유사하며, 이는 명 초기에 하사품이나 외교 교류의 답례품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명 초에 제정된 관양의 기물로 보이는 행엽집호가 조선에 전래되어 주자 조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Ⅱ형 소주자는 소형 용량과 실용성을 특징으로 하며, 중국 북방 자기와 명대 소형 주자 기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손잡이 조형에서 쌍이잔과의 유사성이 확인되며, 주기로 사용된 기종임을 뒷받침한다. Ⅲ형 주자는 명대 다화에 나타나는 다관의 형태와 유사하며, 이러한 형태가 차를 달이거나 데우는 다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Ⅲ-2형 주구호는 대사례, 향사례, 향음주례 등과 관련된 의례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배경은 15세기 후반 조선에서 이 기형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조선 15세기의 자기제 주자는 술문화와 차문화의 변화, 금속기 규제, 국가 의례 정비 등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요인에 의해 조형과 기능 면에서 고려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이루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15세기 사회와 문화 전반의 변화를 반영하는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자기제 주자는 단순히 실용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넘어 의례와 제사에 사용되는 상징적 기물로 자리 잡았다. 조선 15세기의 자기제 주자는 고려 말 상감청자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명대 자기 문화나 중국 북방 자기 문화 등의 영향을 받았고, 동시에 조선 고유의 실용성가 기술이 가미되며 새로운 조형을 이루어내었다. 특히 병형, 원통형 소형, 원호형 등으로 나뉜 다양한 유형은 각기 다른 기능적 요구와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며 제작되었다. 이러한 자기제 주자의 조형적 다양성과 변화 양상은 조선 15세기의 새롭게 변화하는 문화의 흐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 의례와 실생활에서 요구되는 실용성과 상징성을 충족시키는 기물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 보인다. 본 연구는 자기제 주자가 지닌 특징과 조형 변화의 양상을 고찰하여, 새롭게 변화되는 조형에 반영된 조선 15세기의 사회적 요구와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다만, 출토품과 전세품 등의 유물자료가 제한적이어서 연구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으나, 향후 추가적인 발굴 자료와 연구가 진행된다면 본 연구에서 제시한 내용을 넘어서는 심화된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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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This study analyzes porcelain ewers (juja) from the 15th century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ir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production techniques, and sociocultural significance. Porcelain ewers began to exhibit innovative forms in the early 15th century, crafted in diverse shapes and materials. While these vessels inherited the traditions of Goryeo inlaid celadon, they also featured previously unseen forms and ornamental designs. Serving as practical tools for containing and pouring liquids like tea and liquor, they also held symbolic importance as ritual and ceremonial vessels. Despite their significance, the limited availability of extant artifacts and documentary records has hindered extensive scholarly research. This paper thus aims to investigate the background, production context, and formal evolution of these vessels, specifically focusing on the changes in their forms and uses during the 15th century. Porcelain ewers, known as juja, were designed for practicality, typically featuring a spout and handle for easy use. This research examines buncheong ware and white porcelain juja produced during the 15th century. An analysis of the terminology and documented uses of juja reveals that the vessels were often identified by their form or function rather than their general name, underscoring their connection to the consumption of tea and liquor.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Five Rites” (五禮) were formalized, and ritual texts such as the Sejong Sillok and Gukjo Oryeui were compiled in the 15th century, providing a standard for ceremonial practices. These texts document the use of ewer, such as geumbongbyeong (golden phoenix bottle) and geumdaebyeong (golden belt bottle), in state ceremonies. Additionally, wonho and bangho, which lack handles and feature spouts, were used for rituals such as hyangsarye and hyangeumjurye. Dagwan (tea kettle) with upward handles, seen in late Joseon uigwe, were likely used to heat and serve liquids. The multifunctionality of juja is further reflected in its use for decocting liquids and serving tea or alcoholic drinks. The morphological evolution of juja was influenced by changes in tea and liquor consumption patterns during the 15th century. The widespread use of distilled liquor (soju) from the 1430s to the reign of King Seongjong resulted in the development of small-scale vessels tailored for high-proof liquors. Compared to Goryeo’s 14th-century bottle-shaped vessels measuring 25–30 cm in height, 15th-century juja displayed smaller or flattened forms. Similarly, tea culture transitioned from powdered tea methods (煎茶法) to decoction methods (煎茶法 and 煮茶法), further shaping the design of teaware. The introduction of loose-leaf teas such as jakseol-cha and influences from Ming China's tea practices contributed to these transformations. The material shift from metal to porcelain, driven by resource shortages and regulations on precious metals during the 1410s–20s, also spurred the production of porcelain ewers as substitutes for luxury metal vessels. This study categorizes porcelain juja into three primary types based on body shape: Type I (bottle-shaped), Type II (cylindrical small-scale), and Type III (rounded kettle-shaped). Further classification is based on spout and handle designs. These types were produced and utilized at different times and locations, with the majority of artifacts concentrated in the west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Type I vessels, often used for rituals, were influenced by Ming-era xingye-ewer(ewer with heart-shaped panels) forms and produced during the early 15th century. Type II vessels were small, practical, and often accompanied by double-handled cup, indicating their connection to distilled liquor. Type III vessels were primarily associated with tea, featuring flat bases and decorative techniques like iron painting and slip designs. In conclusion, the porcelain ewers of 15th-century Joseon exemplify innovations in form and function driven by societal and cultural shifts. These vessels reflect changes in tea and liquor culture, restrictions on metal resources, and the establishment of state rituals, serving both practical and symbolic roles. This research highlights the significance of juja in understanding the material culture and evolving sociocultural dynamics of 15th-century Joseon. Despite limitations due to the scarcity of extant artifacts, future discoveries and studies promise to provide deeper insights into this unique aspect of Korean porcelai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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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머리말 1
II. 문헌기록의 주자 용례와 조형 변화 배경 6
1. 문헌기록의 주자 개념과 용례 6
1) 주자의 개념 7
2) 주자의 명칭과 용례 8
2. 주자의 조형 변화 배경 24
1) 주종의 다양화와 음용 확대 24
2) 다례 설행과 차 음용법의 변화 35
3) 금속기 규제로 인한 자기제 주자의 제작 47
III. 자기제 주자의 유형 분류와 유적 출토 현황 53
1. 유형 분류 53
1) 병형 주자 53
2) 원통형 소주자 57
3) 원호형 주자 61
2. 유적 출토 현황 65
1) 생산유적 65
2) 소비유적 78
3) 주자의 유적 출토 양상과 특징 102
IV. 주자 조형의 연원과 시기별 변화 양상 109
1. 자기제 주자 조형의 연원과 제작 의미 109
1) 용두형동물머리형 주구 조형 109
2) 편병형 주자 조형 111
3) 원통형 소주자 조형 117
4) 원호형 주자 조형 123
2. 자기제 주자의 시기별 조형 변화 양상 126
1) Ⅰ기(1392년~1420년대) 126
2) Ⅱ기(1430년대~1460년대) 127
3) Ⅲ기(1470년대~1500년경) 129
V. 맺음말 132
참고문헌 136
도판목록 146
삽도목록 150
표목록 156
참고도판 159
ABSTRACT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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