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1980년대 현재주의(Presentism) 확산과 ‘국사’ 교육의 변화
The Emergence and Impact of Presentism in Korean National History Research and Education
초록/요약
크로체의 테제인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는 역사주의(Historism)에 대한 현재주의(Presentism) 역사학의 ‘봉기(revolts)’를 알리는 선언이었다. 본 연구는 19세기 역사주의를 비판하며 20세기 대두한 현재주의의 의미와 쟁점을 서구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논의를 통해 개괄한 후, 현재주의가 해방 이후 한국의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에 어떻게 확산되고 정착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19세기 독일에서 등장한 역사주의는 “그것이 과연 어떠했던가만을 제시할 뿐”이라는 연구 원칙과 “모든 시대는 신에 직결된다.” 랑케의 명제에 기초한다. 이에 반해 ‘현재주의 학파’로 불리는 크로체-콜링우드와 미국의 ‘신사학자’들은 랑케식의 객관적 역사를 ‘환상’이라 일갈하면서 모든 역사가 주관적이고 현재적인 가치의 산물임을 역설하였다. 이들은 객관적 역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넘어, 그것이 설령 가능하더라도 무용하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현재주의는 모든 역사 연구와 서술이 ‘현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인식론적 성찰을 의미하는 ‘필연으로서의 현재주의’와 모든 역사가 ‘현재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규범으로서의 현재주의’로 나누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전통적인 역사연구와 교육의 의미와 효용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해방 세대’가 본격적으로 학계에 진출하며 미국과 유럽의 현재주의 역사이론과 서술이 서양사학자들에 의해 한국사 학계에 소개·전파되었다. 현재주의가 광범하게 전파되면서 현재 당면한 정치적 과제를 앞세우는 역사연구와 교육을 ‘문헌고증 위주의 실증사학’ 혹은 ‘사실 중심의 교육’보다 ‘더 발전된’ ‘더 근대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그 결과 해방 직후까지 박한 평가를 받던 민족주의적 국사연구와 교육이 해방 이후 전문연구자들에 의해 재생하여 아카데미즘으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었으며, 국사교육 역시 근대적 정치이념인 민족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1970년대 이후 현재주의적 사유 경향이 한국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 정착하는 가운데 역사의식 담론이 지성계 전반에 크게 유행하였다. 역사의식은 과거 사실의 인식 그 자체보다 현재와 미래의 창조적 변화를 목표로 역사를 사유하는 역사철학적 의식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식은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의 패러다임을 크게 변화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식민사관에 의해 부정적으로 그려지던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긍정적으로 정화(淨化)하려는 움직임이 독재정권, 학계, 재야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국난극복사, 내재적 발전론, 상고사의 미화 등이 그 결과물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저항적 역사의식 역시 대두하여 통일민족주의와 민중민족주의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의식의 강조는 현재주의가 필연성을 넘어 본격적으로 규범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현재주의는 한국 전근대사 교육의 파행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규범으로서의 현재주의’는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사실들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장려한다. 또 현재주의 패러다임 안에서 현재와 관련이 없는 과거는 경시되기 쉽다. 국사교육에서는 근현대사 분량을 꾸준히 증가한 반면 전근대사는 축소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독립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오늘날 ‘국사’ 패러다임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국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은 많아도, 현재주의가 이 패러다임을 지원한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는 현재주의가 자명하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객관성이 “고상한 꿈”이며, 비당파성이 당장의 현실에 무익해 보일지라도, 성찰과 절제 없는 주관성과 정파성 추구가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본고는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한국의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에서 현재주의적 사유 경향이 어떻게 발생하고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재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글이 현재주의를 ‘역사화’함으로써 그것에 균열을 내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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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ce’s thesis, “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 marked the emergence of presentist historiography in revolt against historism. This paper explores presentism as a 20th-century response to 19th-century historism, examining its global spread post-World War II and its impact on Korean historiography and education post-liberation. Historism, which emerged in 19th-century Germany, was characterized by the principle of “wie es eigentlich gewesen” and the belief that “Jede Epoche ist unmittelbar zu Gott”, as summarized by Ranke. However, figures like Croce, Collingwood, and American proponents of ‘New history’ presentist school dismissed objective history as an “illusion,” arguing that all history reflects subjective present values. At its core, the presentist school contends that objective history should be rejected not because it’s impossible but because it’s deemed useless, even if achievable. In other words, presentism consisted of ‘presentism as inevitability’ which refers to the epistemological reflection that all historical research and narrative takes place ‘in the present,’ ‘presentism as norm’ which rewrites history based on the belief that all history should exist ‘for the present’. Presentism has spread globally since World War II, prompting a reassessment of the significance and utility of traditional history education. In post-liberation Korea, presentism profoundly reshaped the landscape of national history research and education. Following the Korean War, the 'liberation generation' within academia introduced and disseminated American and European presentist theories and narratives, prioritizing historical research and education that aligned with contemporary political imperatives over empirically-driven, fact-centric approaches. This ideological shift revitalized nationalist historiography, firmly embedding national history education within the framework of modern political ideologies, notably nationalism. Since the 1970s, the discourse of historical consciousness has become very popular in the intellectual circles as the trend of presentist thinking has taken hold in Korea. Historical consciousness is philosophical consciousness that thinks about history with the goal of creative change in the present and future rather than the recognition of past facts. The establishment of this historical consciousness as the ultimate purpose of studying and learning history laid the groundwork for significant changes in national history research and national history education. In the meantime, a movement to positively purify Korean history and tradition, which had been negatively portrayed by colonial historians, occurred simultaneously in the dictatorship, academia, and the amateur historiography. Since the mid-1970s, a resistance historical consciousness has also emerged, leading to the rise of unification nationalism and folk nationalism. This prevalence of historical consciousness means that presentism has gone beyond inevitability and has become a full-fledged norm. Also, presentism has contributed to the decline of pre-modern history education in Korea. As a norm, presentism not only permits but encourages the selective interpretation of past facts from present perspectives. Emphasizing “how the present came to be” over “how the past was,” presentism has facilitated the marginalization of past events deemed irrelevant to the present in Korean national history education. Consequently, the study of modern history has expanded while pre-modern history has diminished, even leading to the separation of subjects like ‘Modern Korean History.’ While acknowledging the complexities of achieving Ranke’s ideal of “letting the facts speak for themselves,” this paper critically examines the historical development and consequences of presentism in Korean national history research and education. By contextualizing presentism within the broader historiographical discourse, this study aims to provide a nuanced perspective on its impact and implications, stimulating scholarly debate on the future trajectory of historical inquiry and education in Korea.
more목차
국문초록 ⅰ
Abstract ⅳ
목차 ⅶ
표 목차 ⅸ
그래프 및 사진 목차 ⅹ
I. 서론 1
1.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 1
2. 선행연구 검토 13
3. 자료 및 논문 구성 23
II. 현재주의로의 전환과 서구 역사학계·역사교육계의 논의 27
1. 역사주의와 현재주의의 긴장 28
1) 역사주의의 위기와 ‘현재주의 학파’의 등장 28
2) 현재주의의 필연성과 규범성 39
3) 역사주의에 입각한 현재주의 비판 51
2. 현재주의의 확산과 역사교육의 변화 56
1) 현재주의의 확산과 논쟁의 격화 56
2) 역사의식과 민주시민교육 62
3) 역사적 사고와 현재주의 70
III. 한국전쟁 이전 ‘국사운동’의 대두와 현재주의의 한국적 기원 80
1. 미군정기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의 동향 및 ‘국사운동’의 대두 81
1) 미군정기 국사연구 및 국사교육의 동향 81
2) 신민족주의 ‘국사운동’과 국사교육론 96
3) 마르크스주의사학 계열의 ‘신국가 건설 운동’과 역사학 110
2. 정부수립 전후 ‘국사운동’의 퇴조와 문헌고증사학의 재정비 120
1) 문헌고증사학 계열의 ‘국사운동’ 비판론과 재정비 120
2) 마르크스주의사학 계열의 퇴조와 신민족주의의 극우화 129
3) 현재주의의 한국적 기원으로서 ‘국사운동’의 의미와 한계 137
IV. 1950~60년대 서구 현재주의의 확산과 민족주의 사학의 아카데미즘화 143
1. 1950년대 현재주의 수용과 국사연구와 교육에서 사관의 강조 144
1) 전후 지성계의 동향 및 ‘해방 세대’의 등장 144
2) ‘해방 세대’의 미국 신사학 소개와 문헌고증사학 비판 155
3) 사관의 강조와 후진성 극복을 위한 국사연구 164
4) 국사교육에서 실천의 강조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경합 175
2. 1960년대 현재주의 확대와 민족주의 사학의 아카데미즘화 187
1) 유럽의 현재주의 소개와 수용 187
2) 국사연구에서 민족주의 사학의 위상과 체계 정립 198
3) 국사교육에서 현재주의 강화와 민족주의의 고양 210
V. 1970~1980년대 현재주의의 규범화와 국사교육의 변화 223
1. 현재주의의 규범화와 국사교육의 목적으로 역사의식 설정 224
1) 현재주의의 정착과 규범화 224
2) 역사의식 담론의 유행 239
3) 국사교육의 목적으로 역사의식의 설정 249
2. 역사의식의 각축과 국사교육 내용의 변화 257
1) 관제적‧국수적 역사의식과 민족사의 정화(淨化) 257
2) 발전적 역사의식과 내재적 발전론 273
3) 저항적 역사의식과 당위로서의 통일과 민주주의 284
3. 근현대사 중심 국사교육 논의와 구현 301
1) 현대사의 의미와 현재주의와의 관계 302
2) 근현대사 중심 국사교육 논의 309
3) 근현대사 중심 교육의 실현 317
VI. 결론 327
참고문헌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