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의 중등 역사교과서 정책과 조선사의 편제 변화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s secondary school history textbook policy and ‘Korean History’ organization
- 주제(키워드) 도움말 조선총독부 역사교육 , 문부성 , 고등보통학교 , 역사교과서 , 교수요목 , 조선사 교육 , 검인정제도 , 『동양사교과서』 , 『신찬대일본제국사략』 , 『대일본역사제요』 , 『중등국사』 , 『 중등역사』
-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도움말 정태헌
- 발행년도 2024
- 학위수여년월 2024. 2
- 학위명 박사
- 학과 대학원 역사학과
- 원문페이지 271 p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korea/000000280483
- UCI I804:11009-000000280483
- DOI 10.23186/korea.000000280483.11009.0000381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본고에서는 조선총독부의 중등 역사교과서 정책과 일본사, 동양사 교과서 각기에 편제되었던 조선사 서술양상에 주목했다. 일제는 식민 지배의 안정과 제국주의 침략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선사를 활용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중등 역사 교과서 정책은 일본 문부성의 교육 방침과 연결되면서도, 조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변용되어 조선 사회에 적용되었다. 먼저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1919년까지 대한제국기에 만들어진 교과서의 사용을 폐기하고, 역사 교과서에 직접 개입하여 조선사에 대한 인식을 조정하고자 했다. 조선총독부는 관‧공립 초등교육 기관에서의 역사교육을 폐지하며 중등교육 기관에서만 역사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조선총독부의 입장이 반영된 교과서를 직접 편찬하지 못했다. 당시 문부성의 교수요목은 일본사 가운데 조선사를 편제시켰지만 조선총독부는 조선사 교육에 대한 방침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에서 가르쳐야 할 역사 역사상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의미한다. 1910년대 조선에서는 문부성의 교수요목이 적용되지 않았고, 조선총독부는 문부성 검정 역사교과서의 사용을 지양하였다. 문부성 검정교과서에서 사용된 ‘독립’과 ‘혁명’, ‘조선 정벌’ 등의 용어가 조선통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기 학부 검정을 거쳐 발행한 『동양사교과서』를 활용하는 한편, 「교과용도서검정규정」을 개정하여 사립학교의 교과서 사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한편 조선총독부는 1913년 『신찬대일본제국사략』을 검정으로 발행하고, 1914년 『외국역사교과서』를 편찬하여, 조선총독부의 입장이 개입된 역사 교과서의 사용을 유도하였다. 또한 대한제국기에 만들어진 역사상 중 조선총독부 통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역사관은 소거시키고자 했다. 1919년부터 1931년에는 일본 내의 정치변동과 3.1운동 이후 조선사 교육의 확대 요구로 초등과 중등교육에서 일본사에 편제된 조선사 교육이 이루어졌다. 1920년 조선총독부 교과서 편집관료가 개입한 『대일본역사제요』를 조선총독부 검정교과서로 통과시켰고, 이때 조선사와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였다. 이 교과서는 1936년까지 수정‧발행되며 조선사와 관련된 사진과 삽화, 지도들이 수록되고 조선사의 역대 왕조를 포함하는 등 일본사 가운데 조선사를 위치시켜 나갔다. 그러나 1920년대 조선총독부는 조선사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시험제도를 유지하여 조선사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은 막고자 했다. 한편, 제2차 조선교육령 실시와 함께 조선과 일본의 학제가 통일되었다.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에서도 상급학교의 진학 기회가 확대되고 문부성의 검정교과서를 도입하는 변화가 있었다. 다만, 조선에서 문부성 검정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만 했다. 이때의 인가양상은 일본의 경우 ‘신고제’적 경향이 강했던 데 반하여, 식민지 조선에서는 ‘허가제’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통치에 문제가 생길만한 구절이 있다면 인가에서 탈락시켜 교육현장에서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1931년부터 1937년에는 문부성의 중학교 교수요목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문부성 검정 일본사 교과서에서 조선사 서술 비중이 축소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문부성은 일본사와 관련 없는 내용을 일본사에서 제외시키고, 조선사의 일부 내용을 동양사에 편제시켰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안정을 위해 조선과 일본의 ‘연결’을 강조해야하는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조선총독부는 상대적으로 조선사 비중이 높은 저자의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켜 일본사 가운데 조선사 교육을 실시하는 입장을 이어나갔다. 또한 경성제국대학의 교과서 개선안을 받아들여 ‘임시역사교과용도서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사와 동양사의 교수요목을 직접 제정하고, 나아가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교과서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한편, 1935년 ‘천황기관설’ 이후 제기된 ‘국체명징운동’은 천황 중심 역사상의 재정립을 요구하였고, 1937년 대륙침략정책이 구상되면서 교수요목의 개정을 이끌었다. 이때 조선사는 만주와의 연결이 강조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조선 내에서 고등보통학교규정과 중학교규정이 통일되었고 일본사에서 조선사를 교수한다는 방침은 폐기되었다. 일본사 교과서에서 조선사의 비중이 축소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동양사에서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 북부지방과 관련된 역사서술은 증대되었다. 이것은 중국으로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사와 만주의 역사를 결합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식민 지배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중일전쟁 이후 교육 현장에서도 강화되어갔다. 침략전쟁이 확산되면서 물자 부족의 이유와 전쟁을 수행할 역사상 확립을 위해 조선총독부는 『중등국사 저학년용』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동양사 교과서와는 달리 일본과의 연결성을 강조하여 ‘남양’으로의 침략 정책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문부성은 1943년 교수요목을 개정하고 ‘국사’를 ‘황국’으로 동양사와 서양사를 혼합하여 ‘동아 및 세계’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1944년 이후 일본과 조선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통일하였다. 조선사에 대한 방침은 ‘대동아사’에서는 지속해서 만주와의 연결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황국사’에서도 ‘만주사’와 연관성이 높았던 고구려, 발해가 또 한 번 주목되었고, 조선사의 편제 및 서술은 전황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일본의 침략 정책을 뒷받침하였다. 주제어: 조선총독부 역사교육, 문부성, 고등보통학교, 역사교과서, 교수요목, 조선사 교육, 검인정제도, 동양사교과서』, 『신찬대일본제국사략』, 『대일본역사제요』, 『중등국사』, 『중등역사』
more목차
서론
제1절 문제 제기 1
제2절 연구대상과 범위 4
제3절 선행연구 검토와 연구과제 8
제4절 논문 구성과 자료 소개 12
제1장 조선사 교육정책 부재와 역사교과서 편찬 지연(1910~1919)
제1절 일본과 분리된 역사교육 정책과 역사교과서 통제 15
1. 문부성의 일본사로 편제된 조선사 교육 방침 미적용 15
2. 역사교과서 유통 제한과 「교과용도서검정규정」 개정 28
제2절 조선사 연구 부족과 관‧공립학교용 일본사 교과서 편찬 지연 36
1. 대한제국기 학부 검정 동양사교과서 임시 사용 36
2. 사립학교용 신찬대일본제국사략 사용 강제와 대한제국기 역사관 배제 46
3. 대중(對中)관계사의 축소와 독립‧혁명 개념을 제외한 외국역사교과서 편찬 56
제2장 일본사로 편제된 조선사 교육 확대와 문부성 검정교과서 도입 (1919~1931)
제1절 ‘내지준거주의’에 따른 조선 학제 변동과 문부성 역사교육 방침 적용 68
1. 일본사에 편제한 조선사 교육의 ‘공식적’ 실시 68
2. 일본과 동일한 학제 적용과 문부성 검정교과서의 도입 78
제2절 조선사 교육 확대와 입시제도 상 조선사 지식의 배제 87
1. 대일본역사제요 발행과 일본사 중심의 조선사 정비 87
2. 조선총독부 검열 체제하 사립학교 교사의 조선사 교재 출판과 교육 99
3. 문부성 검정교과서 중심 입시와 조선사 지식 경시 108
제3장 문부성의 동양사로 편제된 조선사 교육 방침 전환과 조선총독부의 대응 (1931~1937)
제1절 문부성의 교수요목 개정(1931)과 동양사에 편제한 조선사 교육 실시 115
1. 일본 내 ‘사상문제’ 대두와 일본사 체계 정비 115
2. 조선사 교육의 ‘동양사’ 전환과 일본사에서 비중 축소 124
제2절 조선총독부의 일본사에 편제된 조선사 교육 유지와 문부성 검정교과서 재검토 133
1. 식민지 교육 관계자의 문부성 검정 역사교과서의 부적절성 지적 133
1) 조선인의 일본사 이해를 위한 조선사 교육 필요성 제시 133
2) 문부성 검정교과서의 인가 거부 증가와 교과서 제도 개선 요구 137
2. ‘역사교과용도서조사위원회’의 활동과 교수요목 개정시도 141
3. 조선총독부 검정교과서 확대와 문부성 검정교과서 수정 15
제4장. 조선사의 동양사 편제방침 수용과 문부성 교육정책으로 일원화
제1절 교수요목 개정(1937)과 ‘만주사’의 일부로 전환된 조선사 161
1. ‘국체명징운동’의 전개와 문부성의 천황 중심 역사상 재정립 165
2. 조선 내 ‘일선(日鮮)’ 교육 방침 통합과 일본사에서 조선사 교육 축소 171
3. 중일전쟁 합리화를 위한 ‘만선사(滿鮮史)’ 강조 182
제2절 조선총독부의 중등국사 편찬과 ‘만선사’의 보완 190
1. 전시물자 부족에 따른 교과서 ‘지정제’와 일본사 교과서 단일화 190
2. ‘대동아공영권론'과 ‘남양(南洋)’ 침략을 위한 조선사 서술 재편 198
제3절 교수요목 개정(1943)과 ‘황국사’의 재편 205
1. 전황 악화와 조선과 일본의 교육 일원화 205
2. 일본 중심적 역사 인식 심화와 ‘대동아사’와 ‘황국사’ 제정 211
3. 문부성의 중등역사 편찬과 역사 황국편 사용 218
(1) ‘독립국’으로 만주국 서술과 정당화 기제로서 조선사 배치 218
(2) ‘선만지역’ 역사 통합과 ‘황국사’로 흡수 223
결론 231
참고문헌 2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