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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前期 廣州 官窯에 미친 地方窯의 제작 기술 硏究

The Influence of Regional Kiln Manufacturing Techniques on Royal Kilns of the Early Joseon Period

초록/요약

본 논문은 조선 전기의 가마구조에 대해 살핌으로써, 지방요가 관요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1460년대 후반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전국에서 공납 받던 자기들을 국가가 직접 생산한다. 이에 따라, 각 지방에서 자기를 생산하던 사기장들도 경기도 광주에 교대로 입번(入番)하여 자기를 생산하게 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관요 설치 이후, 변화된 자기 생산체제로 나타난 지방 장인들의 이동과 그로 인해 발생한 관요와 지방요의 교류에대해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관요가 설치되기 이전, 각 지방에서 관할하는 가마에서 공납용 자기를 생산하여 중앙에 납입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말 공양왕(恭讓王, 재위 1389-1392) 부터이다. 『世宗實錄』「地理志」의 각 토산(土山)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전국 8도의 자기소, 도기소에 관하여 소재지 및 품질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 납입되는 자기의 종류는 대부분이 분청사기였으며, 국가는 전국에서 납입되는 분청사기의 손실을 방지하고, 품질을 유지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음이 사료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공납용 분청사기에는 관사명(官司名)이나 장인명(匠人名)과 같은 명문이 새겨진다. 특히 분청사기에서 발견되는 관사명은 사선서(司膳署), 덕천고(德泉庫), 공안부(恭安府), 인녕부(仁寧府), 경승부(敬承府), 인수부(仁壽府), 덕녕부(德寧府), 내자시(內資寺), 예빈시(禮貧寺), 장흥고(長興庫), 사옹방(司饔房) 등이 있는데, 임시관사의 경우 왕실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설치·혁파되므로 제작시기 편년이 가능하다. 국가는 이러한 명문 이외에도 견양(見樣)이라는 모본을 만들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자기의 규격과 문양을 일원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반면, 관요가 설치된 이후 국가가 직접 제조를 관리 및 감독하게 된다. 고려의 관장제(官匠制) 근무형태가 장기간 국가에 매여 물품을 제작한 것과 달리 장인들은 번차에 따라 근무를 하게 된다. 조선 전기에는 다양한 공장의종류가 있으며, 관련된 기록인 『經國大典』「工典」工匠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전기 경공장은 129종, 소속 장인은 2,841명이며, 외공장은 2 종 3,656명으로 총 6,497명이 관영수공업에 편제되었다. 그중 사기장은 380명으로 모두 경공장에 포함되며, 단일 종목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속한다. 번차로 활동하던 사기장들은 자신의 직역의 기간을 다하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 국가에 공장세를 납부하였다. 이처럼 관요와 지방요를 오가며 자기를 제작하던 장인이 있었기에 여러 기술적인 교류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편, 380명의 사옹원 소속 사기장을 일시적으로 충원하기 위해 1460년대말 전국 각지의 지방 자기 제작지가 급격히 감소한다. 또한 『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자기의 품질이 중품(中品)으로 기록된 제작지의 경우 외공장에편성된 예가 전혀 없고, 하품(下品)을 제작하던 일부 지역에만 외공장에 편성되어 있다. 이는 중앙의 경공장에 더 나은 품질의 자기를 만들던 사기장을편성시킨 국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또한 겨울 2-3개월을 제외한 기간동안 사기장이 번갈아 장기적으로 체류하였기 때문에, 사기장이 속해있던 지방 가마터의 운영에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조선 전기의 가마를 지역별로 살펴보고 불기둥 및 계단의 유무, 봉통부 및 번조실의 평면형태 등을 기준으로 유형을 분류하였다. 대분류인 Ⅰ·Ⅱ· Ⅲ·Ⅳ·Ⅴ형식은 각각 단실요, 단실불기둥요, 단실불기둥단차식요, 단실천장지주요, 분실격벽요로 분류하였다. 이어 봉통부의 평면형태에 따라 타원형(A 형), 장방형(B형), 역제·팽이형(C형), 번조실의 평면형태에 따라 일자형(a형), 사선형(b형)으로 분류하였다. 이처럼 조선 전기의 가마들을 유형별로 분류해본 결과, 지방요에서 관요로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요소들이 있었다. 먼저 번조실 바닥의 단차는 15세기 중반에 운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전라지역의 고창 용산리 가마에서 먼저 나타난다. 경상지역 역시 15세기 후반 운영된 칠곡 다부동 가마에서 번조실 내 단차가 발견된다. 반면, 경기지역에서는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단차를 사용한 가마가 나타난다. 광주 신대리 21-2호는 전라지역 가마들의 단차와 같이 굴곡이 명확하며, 단차를 지나며 번조실의 경사도가 완만해진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불기둥 상단에 격벽을 두어 번조실 내부를 분리하는 형태 역시 지방요에서먼저 나타나는 가마구조이다. 가장 먼저 부분적으로 격벽이 나타나는 지역은경상지역으로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운영된 산청 방목리 1호가 있다. 이후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운영한 충청지역의 부여 정각리 가마에서도나타나는데 이는 17세기 중반에 운영된 광주 송정동 5·6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두 가마는 세 칸의 번조실, 평면형태가 제형인 봉통부와 번조실, 가마 크기 등에서 상당히 유사하였다. 사선형 번조실은 17세기 이후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이 시기에는거의 사다리꼴의 평면형태를 띤다. 사선형 번조실은 일자형 번조실에 비해후행하는 양상으로 확인되며, 조선 전기에는 일자형에서 사선형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가마가 등장한다. 이는 전라지역과 경상지역에서는 15세기 말부터등장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16세기 중반에 나타난다. 관요에서는 16세기 말엽의 신대리 21-2호에서 사선형 번조실이 나타난다. 사선형 번조실은 시기적으로 근접하고, 가마 유형과 제원이 유사한 전라지역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초벌구이칸 역시 지방의 가마에서 먼저 확인되며, 산청 방목리 1호의 별실형 초벌구이칸을 광주 우산리 9-3호에서 필요에 맞게 적용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쌍가마는 관요와 충청지역의 영향 관계를 보여주는 가마 구조로서, 도마리 7-1·2호에서 나타난 쌍가마 구조가 공주 온천리 1·2호에 영향을 주었고, 이는 다시 무갑리 14-1·2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관요가일방적으로 지방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양방향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가마 구조의 변화와 출토품의 양상에 따라 조선 전기를 다시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먼저, Ⅰ기는 14세기 4/4분기로 여말선초부터 15세기 3/4분기에 해당하는 관요 설치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 관요와의 영향 관계를 보았을 때, 경상지역이 가장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경상지역에서는 상품자기를 생산하는 곳이 많았고, 태토 역시 훌륭하여 예로부터 좋은 품질의 자기를 생산하기로도 언급이 많이 되었다. 관요를 설치할 때, 경상지역의 상품자기소에서 일했던 사기장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데려갔다는 사료도 있다. 경상지역에서는 백자를 생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경기지역 다음으로 가장 먼저 보이며, 이로 인해 불기둥의 설치도 먼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관요가 설치된 이후인 15세기 4/4분기부터 16세기 2/4분기를 Ⅱ기로 구분하였다. 하한시기인 16세기 중반은 관요에서 단차식요가 등장하고, 출토품의 경우 ‘天·地·玄·黃’명 백자가 출토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 관요는 대부분 Ⅱ형식의 가마로, 충청지역과 가마의 유형이 가장 유사하며, 출토품의 양상도 점점 유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경상지역의 영향이 점점 떨어지고, 출토품도 관요와 점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됨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전라지역에서는 점점 관요와의 유사성이 감지되며 16세기 중·후반에는 단차식요, 사선형 번조실과 같은 영향을 주고 있다. Ⅲ기는 16세기 3/4분기부터 17세기 1/4분기로 ‘左·右·別’명 백자가 생산되기시작하는 1560년대를 시작으로 하였다. 관요는 이 시기에 사선형 번조실이처음 나타나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전라지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각 지역별 가마들은 각각 다른 시기에 관요에 지속적인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 지방요가 관요에 미친 영향을 시기·지역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비교적 관요에 치중된 연구에서 벗어나 조선 전기 가마를 다각도로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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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This study examines the structure of the kiln of the Joseon Dynasty an d reviews how regional kiln influenced royal kiln. In the late 1460s, when the royal kiln was established in Gwangju, Gyeonggi region, the state pro duced white porcelain which had been previously provided from all over t he country. Accordingly the porcelain artisans who used to produce porcel ain in each province took turns making white porcelain in Gwangju, Gyeo nggi reg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movement of loc al artisans, which can be observed in the changed porcelain system after t he installation of the royal kiln and the exchange between the royal kiln a nd the regional kiln that occurred as a result. Before the installation of royal kiln, using kilns managed by the govern ment to produce porcelain, made to be given as tributes, began from the t ime of King Gongyang(恭讓王, reigned 1389-1392) of Goryeo Dynasty. Th e section about each native mountain of 『世宗實錄』「地理志」 states the location and quality of the porcelain and pottery-producing area of the eig ht provinces. The historical records confirm that the country made various efforts to prevent losing a grayish-blue-powdered celadon tributed nationwide and to maintain their quality. Thus, the grayish-blue-powdered celadon are inscri bed with the name of government offices and artisans’ names. In particula r, the names of government offices found on the grayish-blue-powdered c eladon include Saseonseo(司膳署), Deokcheongo(德泉庫), Gonganbu(恭安府), Inyeongboo(仁寧府), Gyeongseungbu(敬承府), Insoobu(仁壽府), Deoknyeongb u(德寧府), Naejasi(內資寺), Yebinsi(禮貧寺), Jangheunggo(長興庫), Saongba ng(司饔房), etc. For temporary government offices, they were installed and taken down according to the changes of th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This means that they can be recorded in the order of production. In additi on to these inscriptions, the state also made efforts to create a model of t he Gyeonyang(見樣) and to unify the standards and patterns of grayish-bl ue-powdered celadons from all over the country. Unlike Goryeo Dynasty's official system of work(called “Gwanjangje”, 官匠制), which individuals were tied to the state for a long period of time to manufacture goods, artisans of Joseon Dynasty took turns working. There were different types of artisan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hi ch are recorded in the related records of 『經國大典』 「工典」 工匠條 in detail. According to the records, there were 129 types of artisans belongin g to the government. There were 2,841 artisans belonging to the governm ent. Also, local governments had 2 types of artisans and a total of 6,497 artisans who worked as craftsmen for the government. Of those, 380 were white porcelain artisans who belonged to the government, the largest num ber of artisans in a single category. When the white porcelain artisans ha d completed their terms of service, they would return to their original plac e of residence and make a profit on their own terms. In this way, it can be inferred that there were artisans who produced white porcelain between the royal kiln and regional kilns, so various technical exchanges could be exchanged. However, in order to temporarily fill the spots of 380 artisans Saongwon needed, the number of regional kilns across the country declined sharply i n the late 1460s. Also, in the 『慶尙道續撰地理誌』, there are no examples of local white porcelain workshops. It only has the records for low-quality local white porcelain workshops in a few regions. This shows the state’s i ntention to organize a group of white porcelain artisans who made better quality works for the central government’s workshop. In addition, since th e artisans stayed for a long time taking turns, except for two to three mo nths in winter, it seems that it had a great impact on the management of regional kilns, where the artisans originally belonged. This study reviews the kiln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by region and categorizes the types based on the presence or absence of flame pillar and stairs, flat shape of a firing chamber and combustion chamber, etc. The m ajor categories, Ⅰ·Ⅱ·Ⅲ·Ⅳ·V, were categorized into Single Chamber Kiln, Single Chamber Kiln with Flame Pillars, Single Chamber Stepped Kiln wit h Flame Pillars, Single Chamber Kiln with Ceiling Supports, and Single C hamber Partitioned with the Wall. Moreover, according to the flat shape of the combustion chamber, they were classified into oval(A), rectangular(B), reverse and top type(C). Lastyly, straight(a), and diagonal(b) types accordi ng to the flat shape of the firing chamber. As a result of categorizing the kiln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by typ es, there were factors that suggest that the characteristics first developed in regional kiln and influenced the royal kiln. First, the steps at the botto m of the firing chamber first appeared in Yongsan-ri, Gochang, Jeolla regi on. The steps have also been found in the firing chamber in the Gyeongs ang region since the late 15th century. Meanwhile, in the Gyeonggi region, royal kilns with steps appeared in the mid-16th century. Gwangju Sindaeri number 21-2 had a clear curve that looked like the steps of kilns in the Jeolla area. Also, it showed another similarity in that the slope of the firin g chamber became less steep as it went on through the steps. Also, a partition at the top of the flame pillar separated the firing cham ber was first seen in Sancheong Bangmong-ri number 1, which operated i n the late 15th to early 16th centuries. In addition, the Buyeo Jeonggak-ri kiln in the Chungcheong region was operated in the late 16th to 17th cent uries. However, unlike Sancheong Bangmok-ri number 1, which only had a flame facility in front of the last firing chamber, it had flame facilities a nd partitions installed in all firing chambers. This seems to have influence d in Songjeong-dong number 5·6 kilns, Gwangju, which operated in the m id-17th century. Both kilns were about twenty meters long, and the width ranged from one to two meters. The firing chambers had diagonal shapes that gradually widened as they headed towards top of the kiln. The diago nal firing rooms were first seen in all the regions other than the royal kil n. It began to appear partially in the royal kiln after the late 16th century. Through the changes in the structure of kilns in the early Joseon Dyna sty, specific periods were defined, and the influence between the royal kiln and regional kilns was reviewed. First, period I is set from the fourth qua rter of the 14th century to the third quarter of the 15th century when Jos eon was founded to before the royal kiln was installed. When looking at t he influence relationship with the royal kiln by period, it was found that t he Gyeongsang region was the most similar before and immediately after the royal kiln was established. In the Gyeongsang region, there were man y places that produced high-quality white porcelain, and soil was also exc ellent, so it has been mentioned a lot as producing high-quality porcelain since ancient times. In the Gyeongsang region, the movement to produce white porcelain is the first after the Gyeonggi region, and it seems that th e installation of flame pillars occurred first. From the fourth quarter of the 15th century, after the establishment of t he royal kiln, to the second quarter of the 16th century was divided into period Ⅱ. The mid-16th century, the lower limit period, is the period whe n stepped kiln appear in the royal kiln, and in the case of ‘天·地·玄·黃’ w hite porcelain was excavated. Most of the royal kiln during this period we re type Ⅱ kilns, and the types of kilns were the most similar to those in the Chungcheong region, and the patterns of excavated items were gradua lly becoming similar. It can be seen that the influence of the Gyeongsang region gradually decreased during this period, and the excavated products developed in a different pattern from the excavated white porcelain. On th e other hand, in the Jeolla region, similarities with the royal kiln are incre asingly detected, and in the mid and late 16th century, they have effects s uch as stepped kiln and diagonal firing chambers. Period Ⅲ began in the 1560s, when ‘左·右·別’ white porcelain began to be produced from the third quarter of the 16th century, to the first quarte r of the 17th century. During this period, a diagonal firing chamber appear s for the first time in the royal kiln. As mentioned earlier, it seems to ha ve been most affected by the Jeolla region. As such, it can be seen that kilns in each region have a continuous infl uence on the royal kiln at different times. By examining the influence of r egional kilns on the royal kiln in a timely and regional manner, it will be an opportunity to consider kiln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various ways, away from research that focuses on the royal ki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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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1
Ⅱ. 朝鮮 前期 沙器匠 입역체제와 地方窯와의 관계 6
1. 官窯 설치 이전의 공납제 7
2. 官窯 설치와 沙器匠 입역체제 13
3. 分番制와 地方窯와의 관계 20
Ⅲ. 朝鮮 前期 지역별 窯址 현황 26
1. 경기지역 26
2. 충청지역 36
3. 전라지역 42
4. 경상지역 53
Ⅳ. 朝鮮 前期 官窯와 地方窯의 기술 교류 64
1. 朝鮮 前期 가마 유형 분류 64
1) Ⅰ형식: 단실요 65
2) Ⅱ형식: 단실불기둥요 66
3) Ⅲ형식: 단실불기둥단차식요 70
4) Ⅳ형식: 단실천장지주요 74
5) Ⅴ형식: 분실격벽요 76
2. 地方窯에서 선행하는 가마구조 79
1) 번조실 바닥의 단차 79
2) 불기둥 상단의 격벽 81
3) 사선형 번조실 83
4) 초벌구이칸 84
5) 쌍가마 88
Ⅴ. 朝鮮 前期 官窯와 地方窯의 영향 관계 및 의의 92
1. Ⅰ기(14세기 4/4분기-15세기 3/4분기) 92
2. Ⅱ기(15세기 4/4분기-16세기 2/4분기) 95
3. Ⅲ기(16세기 3/4분기-17세기 1/4분기) 104
Ⅵ. 맺음말 107
참고문헌 112
도판목록 119
표목록 121
ABSTRACT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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