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대 조선의 對여진 征討와 그 실상―李廷龜의 箚子⋅獻議를 중심으로―
The Reality and Skepticism on the ‘Punitive Expedition’ against the Jurchens in the Reign of Sŏnjo
- 주제(키워드) 李廷龜 , 征討 , 藩胡 , 城底野人 , 深處胡 , 로툰[老土] , 훌룬[忽剌溫] , 豐界部落. , Yi Jŏnggu (李廷龜) , Punitive Expedition (征討) , Boundary Jurchens (pŏnho , 藩胡) , Jurchens at the Foot of the Fortification (城底野人) , Deep-Dwelling Jurchens (深處胡) , Lotūn (老土) , Hūlun (忽剌溫) , P'unggye Village (豐界部落).
-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 발행년도 2022
- 총서유형 Journal
- DOI http://dx.doi.org/10.17948/kcs.2022..94.287
- KCI ID ART002820621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이 글은 선조대 對女眞 정책의 하나인 征討의 성격을 고찰한 것이다. 정토는 군사력을 동원한 강경책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藩籬를 복원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번리는 조선의 육진 인근에 거주하던 藩胡 부락들로 구성된 ‘울타리’를 의미했는데, 그 외연의 深處胡를 방어한다는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번호는 16세기 중반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17세기 초 대부분 建州女眞에 귀속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선조대인 16세기 말에 집중된 정토는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유지를 꾀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선조대 말 번호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정토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을 다룬다. 특히 李廷龜가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반대론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시행의 당위와 실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서 조선의 대여진 정책이 後金⋅淸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전환되는 연결고리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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