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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대 초반 御營使・摠戎使의 설치와 親明排金 정책의 기류 변화

The Establishment of Ŏyŏngsa and Ch'ongyungsa and the Shift of the Strategy toward the Later Jin during Injo’s Early Reign

초록/요약

이 글은 인조반정 직후 조선의 대후금 정책의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인조정권은 줄곧 ‘親明排金’을 기조로 유지했다. 그러나 친명배금이 고정적인 정책기조였던 것은 아니었고, 광해군대에 시행된 타협적 對後金 교섭의 관성도 남아 있었다. 따라서 인조반정 이후의 친명배금정책은 정론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었으며 암묵적으로는 후금과의 교섭이 가진 현실적 순기능도 인정되었다. 이 글에서는 인조대 초반에 설치된 御營使와 摠戎使를 중심으로 친명배금의 정치적 기치 이면에 존재했던 현실적 면모를 검토하고자 했다. 어영사는 親征을 통해서 후금과의 일전을 불사하고자 했던 반정 초기의 정책 기조를 보여준다면, 총융사는 이괄의 난 이후 도성 방어에 주력하게 된 정책상의 변화를 상징했다. 이러한 대외정책의 미묘한 기류 변화는 친명배금이 정치적 슬로건으로서는 인정되면서도 현실적 고려와 정치적 계산으로 인해 일관된 형태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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