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논문] 1876~1877년 順天府의 진자확보와 진휼 운영
Procurement of Relief Resources and Management of Famine Relief in Suncheon-bu in 1876~1877
- 주제(키워드) 진휼 , 기근 , 자연재해 , 순천부 , 사창 , 賑資 , 願納 , 饒戶富民 , 分賑有司 , Relief Resources , Famine , Disaster , 19th century , Community Granary(社倉) , Affluent People(饒民) , Suncheon-bu(順天府)
- 발행기관 조선시대사학회
- 발행년도 2021
- 총서유형 Journal
- KCI ID ART002736925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이 논문은 1876~1877년 기근에 대응하여 순천부에서 전개된 진휼 운영의 실태를 살핀 글이다. 1876년은 19세기 후반 가운데에서도 극심한 흉년이 발생한 해였다. 순천부에서는 진휼 자원을 확보하고, 기민의 선정에서 진휼곡의 분배에 이르는 진휼 사업을 추진하였다. 순천부에서 확보한 핵심적인 진휼 자원은 사창곡이었다. 사창제 실시 이후 각 지역에서 운영된 사창곡은 경비보충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흉년에는 진휼곡으로 활용되었다. 이 외에도 감영‧수령 차원에서 진자를 마련하였으며, 부민들에게서 거둔 원납전도 주요한 진휼 자원이었다. 이렇게 확보된 진자를 바탕으로 진휼이 시행되었다. 사창제 시행 이후 진휼 운영은 면 단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기존의 환곡제와 달리 각 면에 설치된 사창을 중심으로 진휼이 시행된 것이다. 이때 각종 진휼업무는 각 면에서 차출된 分賑有司가 주관하였다. 지방관이 총괄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면내에서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면별로 이루어진 진휼을 통해 순천부에서는 12월부터 4월에 이르기까지 약 13,600명의 기민에게 진자를 분배하였다. 문제는 진자의 부족으로 진휼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기민이 많다는 점이었다. 순천부에서는 饒民에게 기민을 分屬하여 자체적으로 구제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19세기 후반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원납인, 분진유사, 요민은 모두 순천부 내에 세거하던 유력한 사족ㆍ부민층이었다. 이들은 19세기에 걸쳐 향촌사회 운영을 주도한 세력으로 1876년 기근이 닥치자 여러 형태로 진휼에 참여하였다. 지방관과 사족ㆍ부민을 중심으로 전개된 진휼을 통해 순천부의 수많은 기민들은 기근을 견디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순천부의 사례는 19세기 후반 환곡의 부세화와 별개로 지방 단위에서 꾸준하게 전개되는 진휼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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