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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율곡 이이 문집 편찬의 추이와 의의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Publication of Collections of Yi Yi’s Works in the late Joseon Period

초록/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후기 율곡 이이 문집 편찬의 추이를 통해 율곡학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이 인식의 시대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이 사후 그의 문인들은 이이의 성리설을 중심으로 학문 계승에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들은 서원의 건립과 문집 간행 등을 통해 ‘스승’ 이이에 대한 현창 활동을 병행하였다. 『율곡집(栗谷集)』은 이이 사후 성혼 등이 편성을 시작하여 문인인 박여룡·김장생에 의해 1611년 소현서원(紹賢書院)에서 간행되었다. 이이의 정치적·학문적 입장을 계승한 서인은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계의 주도권을 획득하였다. 이에 따라 이이 또한 ‘문성공(文成公)’이란 시호가 내려졌으며, 『성학집요』·『격몽요결』과 같은 이이의 별저류들이 조정에서 간행되었다. 김집·송시열 등은 이이에 대한 행적을 정리하고자 『율곡연보』 편성에 착수하기도 하였다. 『율곡집』의 간행 또한 이러한 경향에 더하여 중간되었다. 대체로 초간본을 복각하는 형태로 진행된 중간 사업은 서인계 산림(山林)들이 거주하고 있던 충청 및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이 문집 간행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율곡집』에 수록되지 못한 자료를 재정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박세채는 기존에 간행된 『율곡집』이 이이의 행적과 유문을 담아내기에 오류와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율곡속집』, 『율곡외집』, 『율곡별집』 편성에 착수했다. 『율곡속집』은 『율곡집』에 미처 수록되지 못한 이이의 詩文을 수집하였고, 『율곡외집』은 『율곡속집』에 수록하지 못한 시문과 함께 당시 필사본 형태로 전승되어 오던 이이의 대표적 저작인 「경연일기(經筵日記)」를 수록하였다. 『율곡속집』과 『율곡외집』이 이이 유문의 수집과 정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면, 『율곡별집』은 진위논란이 있는 「태극문답(太極問答)」과 이이와 관련한 일화나 행적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었다. 『율곡별집』에 수록된 사항들은 송시열계의 반발을 가져왔다. 송시열계는 해당 사항이 ‘스승’ 이이에 대한 왜곡된 정보뿐만 아니라, 특정 서술은 이이를 의도적으로 폄훼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속된 논란을 거쳐 이이가 문묘에 최종적으로 종사된 갑술환국 이후 『율곡별집』이 수정되기까지 이르렀다. 18세기 송시열의 학문적 입장을 계승한 노론계에서는 이이의 성리설을 토대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18세기에는 기존에 간행된 이이 문집들과 『성학집요』·『격몽요결』 등 별본들을 재편성하여 종합하여 『율곡전서』로 간행되었다. 『율곡전서』는 처음에 이재에 의해 1744년 38권으로 편성되었다. 이재는 송시열로부터 계승된 이이 인식을 토대로 한 문집 편성을 추진하였다. 이 작업은 편성의 완료에도 불구하고 이재 생전에는 추진되지 못하였으며, 사후 1746년에 영조의 명으로 『율곡전서』 간행이 추진되었다. 『율곡전서』 간행의 전반적인 과정은 이재의 문인이었던 홍계희가 주도했으며, 홍계희는 이재가 편성하지 않은 이이의 저작들을 습유라는 형태로 삽입하여 이재가 편성한 원집 38권과 함께 습유 6권으로 『율곡전서』를 구성하여 간행하였다. 습유에는 이재가 탈락시킨 이이 유문을 수록하거나 「경포대부(鏡浦臺賦)」와 같이 검증이 필요한 자료도 모두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이재가 정립하려고 했던 이이 인식의 분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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