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의 淸 琺瑯瓷器 유입경로와 수용태도 연구
A Study on the Course of the Inflow and the Receptive Attitude of the Falangcai Porcelain in Joseon Dynasty
- 주제(키워드) Falangcai porcelain , Yangcai , Fencai , Jingdezhen , Peranakan , Export porcelain , King Gojong , 18-19th Century , 법랑자기 , 양채 , 분채 , 경덕진 , 페라나칸 , 수출자기 , 고종 , 18-19 세기
- 발행기관 한국미술사교육학회
- 발행년도 2019
- 총서유형 Journal
- DOI http://dx.doi.org/10.14769/jkaahe.2019.02.37.115
- KCI ID ART002439586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18세기 중반 이후 법랑자기 제작 기술이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상품용 법랑자기의 제작이 이루어졌고, 이는 청의 법랑자기가 세계 도자기 시장의 주류로 성장하는 중요 한 요인이었다. 즉, 조선에 유입된 대다수의 법랑자기가 분채라는 사실은 청의 법랑자 기 생산 환경 변화에 따른 결과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청 도자기가 기존 유럽 시장에서 의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아시아 시장이 부각되었다. 아시아 시장이 중요한 또 다른 이 유는 각 나라별로 문화적 차이와 풍습으로 인하여 각기 다른 형태의 수용태도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이에 법랑자기의 유입 정황이 뚜렷한 琉球와 일본, 그리고 태국, 말레 이반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태국과 말레이반도에서는 상류층 문화로서 그들의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하 는 하나의 수단이었다면, 조선과 일본은 자국의 도자문화와는 별개로 지배층의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청대의 법랑자기를 수용하였다. 아울러 19세기의 법랑자기는 청 내부적으로 품질이 쇠퇴하고 유럽 자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조선이나 일 본, 그리고 태국, 말레이반도에서는 여전히 상류층 혹은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되었 고 높은 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는 19세기 말엽까지도 조선왕실이 법랑자기를 구득한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 왕실은 18-19세기 동안 법랑자기를 포함한 청 자기의 사회적 위상을 높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실은 대한제국 시기까지 왕실에서 치러지는 진연에 양채자기의 사용을 고수하였다. 조선은 청과의 오랜 교섭 과정 중 청 황제 혹은 사행을 통해 법랑자기가 본래 청궁에서 소용되던 어용 기물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 대한제국 시기까지 조선이 법랑자기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보인다. 조선 왕실은 18세기 말기부터 이어진 청 문물에 대한 호의, 더 나아가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주체로서의 자부심으로 청 법랑자기를 사용함으로서 이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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