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祖代 經筵의 운영과 성격
Study on Royal Lecture During King Injo Period (1623~1649)
- 주제(키워드) Royal Lecture(經筵) , king Injo(仁祖) , Johoe(朝會 , Formal morning audience with rituals) , Yundae(輪對 , rotational audience) , Ingyeon(引見 , Occasional audience on particular subject) , the Coup of 1623(仁祖反正) , the Manchurian Invasion of 1636(丙子胡亂) , Biguk-ingyeon(備局引見 , Court Audience with Pibyŏnsa , the Border Defense Council) , 경연 , 인조 , 조회 , 윤대 , 인견 , 인조반정 , 병자호란 , 비국인견
- 발행기관 조선시대사학회
- 발행년도 2019
- 총서유형 Journal
- DOI http://dx.doi.org/10.21568/CDHA.2019.09.90.97
- KCI ID ART002512114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인조대 경연은 반정의 정당성 강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연은 朝會, 輪對, 引見 등에 비하여 가장 일반적인 국정논의를 위한 현장으로 기능하였다. 경연의 제도적 운영에 관해서는 경연의 종류와 빈도, 참석자의 구성, 논의 구조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인조대 경연의 실상은 대체로 조선전기의 경연 운영을 준행하면서 시행과정에서 제도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山林職의 검토와 같이 조선전기와는 다른 측면에서 경연을 운영하려고 하는 시도들도 확인된다. 인조대 경연은 군신간 引接을 통한 국정운영의 주된 현장으로 기능하였으므로 국정과 관련된 논의들도 경연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대체적으로 진강 중에는 홍문관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진강이후에는 영사․지사나 특진관을 중심으로 국정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경연 내의 국정논의 과정에서 논의의 내용은 논의자의 실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입시한 관원들의 자유로운 토론이 진행되었으므로, 보다 다양한 시각의 논의들도 발생하고 있었다. 경연에서 다루어진 논의들은 朝報 등을 통해 조정 내외로 확산되면서 국정운영의 주요한 현장으로 기능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재개된 경연은 병자호란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정논의의 장으로 기능하였음에도 1639년(인조 17) 이후 인조의 건강 악화로 인해 중지되었다. 경연의 중지는 표면적으로 인조의 건강악화가 이유였지만, 국정운영상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나는 척화론으로 상징되는 삼사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을 국정논의 내에서 배제하려는 데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經典 진강과 국정논의를 병행해야 하는 경연이 가졌던 제도적 한계 때문이었다. 경연의 중지와 동시에 비국인견이 정례화되면서, 이후 국정운영을 위한 인접의 방식도 월3회 비국인견으로 제한되었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