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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파 영화의 재일조선인 서사 연구

A Study of Narrative of Zainichi Koreans in Japanese Social Conscience Films

초록/요약

본 연구는 대일본제국의 패망 이후 GHQ 점령통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부터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는 1965년까지 발표된 일본 사회파 영화의 재일조선인 서사에 대해 분석한다. 1945년 8월 제국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후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은 소외되고 차별받는 존재였다. 특히 재일조선인들은 법적지위의 측면에서 대일 강화조약의 발효와 함께 ‘외국인’으로 규정된 이후 한일협정에 따라 분단체제의 수용과 함께 한국국적의 선택 여부로 법적 구속력 안에 포섭되기를 강요받았다. 이처럼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가 형성되는 큰 변곡점은 1952년 대일 강화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이다. 이 시기에 걸쳐서 재일조선인들은 제도권 밖에 놓인 채 일본의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성을 감내해야 했다. 통시적으로 보면, 전전의 일제강점기 식민통치하에서도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었던 재일조선인은 미군점령을 거친 전후 일본에서도 여전히 법을 통한 폭력에 시달리는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일본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재일조선인들이 전개하는 저항운동이 뒤따르면서 그 자체가 재일조선인 역사의 한 단면이자 재일조선인 연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의 문화공간에서도 그 폭력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지점을 살펴보기 위해 일본의 정치, 사회가 좌우 이념에 따라 보수와 혁신세력으로 양분되는 가운데 중도적인 입장에서 사회문제의 고발과 해결을 극영화를 통해 전개해온 사회파 감독들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본 사회파 영화감독의 극영화에는 다른 매개물보다 상당히 앞선 시기부터 재일조선인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화작품은 진영 논리를 떠나 제국일본의 유산을 비판하기 위해 전쟁책임, 전범처리, 미군기지 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그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을 등장인물로 설정한 구상은 중요한 전후 일본의 행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952년부터 1965년까지 일본 사회파 영화감독들이 발표한 작품들 중에서 재일조선인 서사를 다룬 총 5편의 극영화에 대한 심층분석을 진행한다. 분석대상 영화는 사회 고발성과 재일조선인의 등장, 그리고 DVD 입수 가능 여부에 따라《벽 두꺼운 방, 壁あつき部屋》(1953년 제작/1956년 개봉),《검은 강, 黒い河》(1957년 제작/개봉),《니안짱, にあんちゃん》(1959년 제작/개봉),《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 あれが港の灯だ》(1961년 제작/개봉),《큐폴라가 있는 마을, キューポラのある街》(1962년 제작/개봉)로 제한한다. 연구방법으로는 원작과 영화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관점을 통해 원작품이 영화화되면서 변형된 지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관련 자료로 수집된 경험적 증거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질적 연구를 추구한다. 이에 따른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1945년 패전 이후 점령통치를 거치면서 일본의 정치, 사회뿐만 아니라 재일조선인 단체도 좌우 이념에 따라 양극화되는 가운데, 사회파 영화는 일종의 중도노선을 표방하며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 담론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나 분석대상 영화의 재일조선인 서사에 주목해보면, 원작과 다르게 재일조선인을 신제국주의, 신식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적 모순의 고발자로, 아울러 이러한 전후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민주혁명의 협력자로 재탄생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재일조선인 서사를 통해 추궁되었어야 할 제국일본의 식민지지배 책임을 소거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사회파 영화 본연의 사회 고발적 성격이 재일조선인 서사와 관련지어서 보면 오히려 전후 일본의 문화공간에서 폭력성을 가시화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 사회파 영화에서 드러난 재일조선인 서사의 귀결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전까지 식민지지배 책임을 전면에 다루어서 역사화해의 담론 제공이 가능했던 유일무이한 주체의 소멸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에서 밝혀낸 사회파 영화의 재일조선인 서사는 향후 전후파 영화감독과 재일조선인 영화감독들이 가세하며 표상 공간의 확장과 변증법을 통해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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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本研究は、大日本帝国の崩壊後にGHQ占領期を経て、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条約が発効される1952年から1965年の日韓国交正常化に至るまでの、日本の社会派映画の在日朝鮮人ナラティブを主な分析の対象とする。 1945年8月の帝国の崩壊にもかかわらず、日本の戦後体制が確立される過程において、在日朝鮮人は疎外かつ差別される存在であり続けた。特に、在日朝鮮人は、法的地位の側面から対日講和条約の発効と同時に「外国人」として規定されて以降、日韓協定による朝鮮半島の分断体制の受容とともに韓国国籍の取得によって、法的な拘束力の枠内に包摂される対象と化した。 こうした在日朝鮮人の法的地位が定められる重要な起点は、1952年の対日講和条約と1965年の日韓協定であった。その講和条約から日韓協定に至るまでの間、在日朝鮮人は制度の枠外に置かれたまま、日本の国家権力による暴力性を甘受せざるを得なかった。言い換えれば、戦前の朝鮮植民地支配下でも常に監視と処罰の対象であった在日朝鮮人は、米軍占領期を経た戦後日本においても同じく法律による暴力にさらされる存在であったことを意味する。そこに日本という国家と社会に向けて展開される在日朝鮮人の抵抗運動が伴うことによって、それ自体が在日の歴史の一断面であると同時に、在日朝鮮人研究が一段と進む原動力でもあった。 注目すべきは、在日朝鮮人の法的地位のみならず、戦後日本の文化領域におかれてもその暴力性が如実に表れていた事実である。そのことを明らかにするために、日本の政治と社会がイデオロギーによって左右に分裂される最中、いわゆる中道路線から社会問題の告発と解決を訴えてきた社会派監督の作品に注目する必要がある。なぜならば、日本の社会派映画監督の作品には、他の表現手段には見当たらない戦後の早い段階から在日朝鮮人がスクリーンの中に映し出されてきたからである。彼らの映画作品は、保守や革新といった陣営の論理から一定の距離を置きつつ、日本帝国の遺産を批判するために戦争責任、戦犯処理、米軍基地などに関連する社会問題に正面から向き合ってきた。その際に、在日朝鮮人を登場人物として設定する試みは、戦後日本の重要な足跡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今まで研究対象としては注目されてこなかった。 したがって本研究では、1952年から1965年にかけて日本の社会派映画の中で在日朝鮮人のナラティブを取り扱った、五つの劇映画に対する実証研究を進める。分析対象の映画として、社会問題の告発および在日朝鮮人の登場、そして入手可能なDVDといった基準に沿って「壁あつき部屋」をはじめ「黒い河」「にあんちゃん」「あれが港の灯だ」「キューポラのある街」を選定した。研究方法としては、原作と映画のテキスト間相互関連性(intertextuality)の観点から、原作が映画化される過程で変容された側面に着眼点を置き、テキストに関連する資料を収集した経験的証拠を批判的に考察する定性的研究を使用する。 そして本研究の分析結果は、以下のとおりである。1945年の敗戦以降に占領統治を経ながら日本の政治と社会のみならず、在日朝鮮人の諸団体もイデオロギーにより左右の分裂が顕在化される中、社会派映画は一種の中道路線を掲げて社会問題の解決に向けた代替案の提示に努めようとした。しかしながら、本研究における分析対象の映画に映し出された在日朝鮮人のナラティブに注目してみると、原作とは異なる形で、在日朝鮮人を新帝国主義、新植民主義、そして資本主義的矛盾の告発者として、加えて、こうした戦後体制を克服するための民主革命の協力者として位置づけた事実が浮き彫りになった。それによって、在日朝鮮人ナラティブならではの特殊性に鑑みて追及すべきであった植民地支配責任を取り除く結果を招いた。つまり、社会派映画本来の社会問題の告発性が、在日朝鮮人のナラティブと関連づけてみると、むしろ戦後日本の文化領域における暴力性を可視化したことに過ぎなかったのである。 以上のように、日本の社会派映画に再現された在日朝鮮人ナラティブの帰結は、1965年日韓協定が締結される以前までに、植民地支配責任に正面から向き合い歴史和解への代替案の提示がほぼ唯一に可能であった存在が消滅されることにつながった。にもかかわらず、本研究により解明された社会派映画の在日朝鮮人ナラティブは、それ以降の戦後派の映画監督と在日朝鮮人の映画監督による表象空間の拡大と弁証法を通して、そのスペクトラムの幅が拡張される基盤を提供したという意味でも重要な意義を持つ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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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1
2. 선행연구의 검토 및 문제제기 6
3. 논문의 구성 및 연구방법 16

Ⅱ. 본론 22
1장 재일조선인 그 너머의 시대적 배경, 그 안의 일본 사회파 영화 22
1. 패전 후 일본사회의 구축과 전개 22
2. 패전 후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전개 36
3. 패전 후 일본영화의 형성과 사회파 영화의 등장 47

2장 영화《벽 두꺼운 방, 壁あつき部屋》(1953/1956)론 64
1. 일본사회와 BC급 전범(BC級戦犯) 64
2. 스가모 형무소(巣鴨プリズン)와 일본인 BC급 전범의 기억 68
3. 조선인 BC급 전범의 실제와 영화 속 추상화 문제 87
4. 소결 102

3장 영화《검은 강, 黒い河》(1957)론 104
1.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와《검은 강》 104
2. 일본의 기지문제와 대미종속 107
3. 시즈코(静子)를 둘러싼 서사의 변화 113
4. 선택된 김현순(金賢順), 축소된 구리하라(栗原) 134
5. 소결 153

4장 영화《니안짱, にあんちゃん》(1959)론 155
1. 고도경제성장에서 배제된 탄광과 재일조선인 155
2. 탄광과 구로이하네(黒い羽根)운동 161
3. 복지사 가나코(かな子)와 탄광 문제 166
4. 일본화된 재일조선인 남매와 사카다(坂田) 노파의 대비 176
5. 소결 200

5장 영화《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 あれが港の灯だ》(1961)론 201
1. 이마이 다다시(今井正)와 영화《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 201
2. 평화선(이승만라인)과 한일관계 204
3. 한국의 불법성과 재일조선인 차별 209
4. 소결 226

6장 영화《큐폴라가 있는 마을, キューポラのある街》(1962)론 229
1. 일본사회의 공유된 회피: 식민지지배와 재일조선인 229
2. 가난을 매개로 한 ‘이상적인 준(ジュン)’과 ‘부정적인 요시에(ヨシエ)’의 우정 233
3. 전서구를 매개로 한 ‘강한 다카유키(タカユキ)’와 ‘약한 산키치(サンキチ)’의 우정 248
4. 소결 260

Ⅲ. 결론 262

〈참고문헌〉 272
〈국문초록〉 291
〈일문초록〉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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