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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 연구

초록/요약

1933년 󰡔가톨릭 청년󰡕의 창간을 계기로 벌어진 논쟁은 우리 문학사에 근대적 가톨리시즘 문학론을 출현시켰고 문학의 종교성 담론을 생산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 논쟁이 문학사에서 작은 사건으로 묻힌 채 현재에 이르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논쟁이 체계적인 담론으로 구축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임화, 정지용, 이동구, 김기림, 홍효민, 황욱, 윤형중 등이 핵심 논자로 참여했으며 공격적인 논박을 주고 받을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로 벌어진 논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갑자기 나타난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되고 말았다. 본 연구는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이 생산한 담론뿐만 아니라 그 담론이 다른 담론들과 맺는 관계성을 추적하고자 하였고 1930년대 후반기의 낭만주의론과 휴머니즘론에서 그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문학 논쟁이 갑자기 나타났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일종의 ‘편린’으로 존재해왔다면, 본 논문은 그 조각들을 모아 전체를 이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자 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문학사에 가톨리시즘 문학론이 제출된 1933년의 문단은 순수문학 대 프로문학이라는 큰 대결 구도 아래 매우 역동적인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었다. 순수문학 진영은 시문학파 해체와 구인회 발족 사이의 동인 및 동인지의 부재 상황에 있었고, 프로문학 진영은 카프 내부의 동요로 박영희와 신유인의 퇴맹계 제출이라는 위기에 몰려 있었다. 임화를 주축으로 한 카프 계열 문사들은 밖으로는 순수문학 진영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안으로는 창작방법 및 이념의 실천을 두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이며 프로문학 담론을 체계화하는 단계에 있었다. 반면 순수문학 진영은 구심점의 부재로 인해 풍부한 작품 창작과는 대조적으로 프로문학 진영에 대응할 만한 조직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1933년 후반기 조선 문단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돌연 가톨리시즘 문학이 등장한다. 가톨리시즘 문학론의 등장은 정파적 요청이나 문학사적 연속성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독특한 위치에 놓인다. 가톨릭 신앙인을 위한 종합교양지 성격이었던 󰡔가톨릭 청년󰡕의 창간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청년󰡕지 자체의 위상만으로는 사실상 문단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기림이 1930년대 모더니즘의 비평적 이해를 주도했다면 정지용은 실제 시 창작으로 모더니즘을 구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지용의 주도로 창간된 󰡔가톨릭 청년󰡕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정지용의 적극적 참여는 󰡔가톨릭 청년󰡕에 대한 프로문학 진영의 거센 경계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내부의 동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겠으나 프로문학 진영의 대표 논자인 임화가 가톨리시즘 문학에 대대적인 비판을 가하면서 오히려 󰡔가톨릭 청년󰡕의 출범을 일대 사건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임화의 비판을 계기로 1933년 중반 조선 문단에는 가톨리시즘 문학이 뜨거운 화두로 급부상하게 된다. 임화는 「가톨릭 문학 비판」 이라는 제목으로 7회에 걸쳐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 정치 등의 측면에서 전방위적으로 가톨릭을 비판하였다. 임화가 적극적으로 나서 가톨리시즘 문학을 선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미 이전부터 프로문학 진영에 공유되었던 반종교전선의 영향에 따른 것이었다. 임화의 비판 요지는 가톨리시즘이 자본주의의 사상적 옹호자로서 제국주의 공고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가톨리시즘을 조선 근대문학의 문제점과 연관 짓는다. 순수문학 작가들이 가톨리시즘과 야합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부르짖었던 예술의 순수성을 배반했다고 비판을 가했다. 임화에게 가톨리시즘 문학은 모더니즘이나 쉬르레알리즘과 동궤에 있는 문학의 경향이었던 것이다. 임화의 비판에 정지용은 즉각적으로 「한 개의 반박」이라는 반박문을 냈다. 정지용은 이 짧은 반박문 한 편만을 내고 모든 논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논쟁을 가톨릭 청년사 사장이던 윤형중 신부에게 넘긴다. 이후 정지용은 󰡔가톨릭 청년󰡕지를 중심장으로 삼아 가톨리시즘 시를 다수 발표하였고, 신학 서적 번역을 다수 연재하였다. 정지용의 가톨리시즘 문학은 이론적 탐색과 작품적 실천이 동시에 추구된 독특한 형태였던 것이다. 즉 정지용의 가톨리시즘 수용은 비이성적 신비주의에 의거하지 않았고,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학문적 탐구로 시작하여 문학적 실천으로 이어진 특별한 경우였다.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을 거치며 정지용에 의해 조선의 가톨리시즘 시문학이 근대적 형태로 등장했다는 데에 사적 의의가 있다. 한편, 정지용에게 논쟁을 넘겨받은 윤형중 신부는 총 9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가톨릭 진영의 역습’이라는 기획 논평을 게재하며 반론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윤형중은 가톨리시즘의 사상적 정의들을 산발적으로 제시했는데 이를 종합하면, 가톨리시즘이란 시대 문화를 현실에 부합하여 지도하는 정신을 창조하며 모든 사상을 온건 진리화 하여 받아들이고,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추구하며 교리를 최우선시 하는 사상이 된다. 그런데 윤형중과 임화의 논박에서 양측이 모두 각각 상대편을 파시즘으로 취급했다. 임화는 가톨리시즘이 파시즘과 야합하여 전쟁을 조장하고 폭력을 묵인해왔다고 주장했으며, 윤형중은 좌익 세력이 파시즘 의식에 석권되어 파시즘을 좌단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파시즘을 매개로 한 양자의 상반된 주장은 다종다양한 파시즘의 어떠한 역사적 맥락을 수용했는가의 차이에서 빚어진 것이다. 즉 임화는 산업자본주의와 종교의 결탁으로 파시즘을 개념화한 ‘교권 파시즘’에, 윤형중은 파시즘의 본성을 폭력, 잔인성, 독재 등으로 파악하는 가치평가적 의미에 각각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정지용이 논쟁에서 발을 뺌과 동시에 가톨릭 교회 측의 윤형중이 논쟁에 가세하면서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은 논쟁 초기에 문학보다 사상 및 문화 논쟁의 축으로 기울어 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윤형중의 반박 이후 홍효민, 김기림, 황욱 등이 문학의 관점에서 논제를 설정하며 비로소 문학 논쟁으로서 균형을 잡게 된다. 특히 이동구는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에서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론 정립에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그는 우리 문학사에 최초로 가톨리시즘 문학론을 제출했으며, 거센 비판론을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토마스주의를 가톨리시즘 문학론의 요체로 제시하여 가톨리시즘의 사상적 근간을 이론적으로 구축하고자 시도하였다. 또한 가톨리시즘 문학이 낭만주의를 배격하는 대신 고전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명시하였다. 특히 이동구는 󰡔가톨릭 청년󰡕 창간호부터 정지용과 함께 주요 편집 실무를 맡으면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가톨릭 청년󰡕의 출범과 동시에 이동구는 「가톨닉은 문학을 엇더케 취급할가」를 통해 ‘가톨릭 문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고 가톨리시즘 문학의 기초 개념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문학이 취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관념으로 ‘종교적 이지주의’를 표방하며 감정을 중시한 낭만주의나 물질을 중시한 자연주의와 거리를 두었다. 이로써 가톨리시즘 문학의 종교적 이지주의는 문학에 있어 매우 높은 차원의 도덕적 태도를 요구하게 된다. 이동구가 천착했던 것은 문학성과 종교성 간의 균형이었다. 그는 종교성과 문학성 간의 균형과 조화를 ‘정신의 리듬’이라는 균형 감각으로 명명했다. 여기서 이동구는 가톨리시즘 문학의 요체로 토마스주의를 제시한다. 신학과 이성이 종합된 ‘신적 과학’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주의를 추구함으로써 가톨리시즘 문학은 종교성에 함몰되지 않은, 신적 세계관과 이성 및 철학이 조화를 이루는 문학으로 정의될 수 있었다. 본 논문은 이동구가 이론과 작품 양 측면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논쟁 이후 적극적으로 해외 이론과 문학을 번역 소개하고, 가톨리시즘 소설을 직접 창작하며 󰡔가톨릭 청년󰡕을 중심장으로 삼아 가톨리시즘 문학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동구가 해외 문학이론 수용에 있어 ‘주체성’을 중시한 바, 이러한 행보는 가톨리시즘 문학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방편임과 동시에 한국적 가톨리시즘 문학의 특수성에 대한 탐색의 과정이기도 했다. 논쟁 속에서 떠오른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 태도였다. 현실 인식에 관한 가장 심화된 이론의 흐름을 보인 논자는 김기림이다. 김기림은 다소 유보적인 태도로 가톨리시즘 문학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그는 특히 프로문학 진영에서 반복적으로 비판했던 ‘현실 도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논리를 제출했다. 그는 시인을 도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센 현실의 위기에 주목하고, 가톨리시즘이 이런 처지에 놓인 시인들에게 ‘영혼의 피난소’가 되어 준다는 옹호론을 펼친다.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에서 형성된 그의 현실 인식론운 이후 ‘초현실론’으로 나아가는 중요 토대가 된다. 그에게 있어 ‘초현실’은 ‘도피’의 한 종류로 파악되며 가톨리시즘 문학에 대한 사유와 동일한 인식 구조를 갖는다. 결국 김기림의 초현실론은 ‘시—시학—지식(학문)—현실’이라는 개념축과 ‘신—신학—형이상학—환영(환상)’이라는 개념축이 서로 대립하는 인식구조를 형성하게 되며, 이후 낭만주의 재인식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을 지성과 인간성의 대립으로 치환하고 다시 그 둘을 종합하면서 낭만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과 동일시한 결과, 낭만주의가 곧 휴머니즘이라고 인식하는 데에 이른다.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을 실질적으로 촉발시키고 가장 마지막까지 그 탐색의 사유를 보인 논자는 공교롭게도 임화이다.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의 주요 논자였던 김기림과 임화가 1930년대 후반에 제출한 낭만주의론과 휴머니즘론의 핵심 이론들로부터 가톨리시즘 문학론과의 연속성이 발견됨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낭만주의를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김기림과 임화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임화는 낭만주의의 반역사성과 복고성을 강력히 비난해왔으며 같은 맥락에서 가톨리시즘 문학과 예술지상주의 문학에도 비판을 가했다. 그런데 임화가 ‘인간성’ 및 ‘생명력’이라는 긍정적인 속성을 변증법적으로 수렴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계기는 그의 비평이 지닌 내적 모순 때문이었다. 김기림이 감상적 낭만주의의 초극을 위한 방법론적 지향점으로 초현실론을 제시했다면, 임화는 반역사적 낭만주의의 대타적 사상으로 사회적 리얼리즘을 주장하는 이원적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두 비평가는 비슷한 시기에 다시 낭만주의에 대한 자신의 초기 주장을 수정 보완하게 된다. 김기림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동시적 수용, 임화는 사회주의적 로맨티시즘이라는 변증법적 종합태를 주장하는 단계로 각각 나아간 것이다. 주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을 중시한 ‘낭만성’론을 거치며 임화 문학의 방향성은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향한다. 백철과의 휴머니즘 논쟁이 그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임화의 자기 부정의 정점은 가톨리시즘을 ‘이성과 합리주의를 가톨릭 교의와 결합한 근대적 시도’라고 평가한 지점이다. 논쟁이나 조직 행동의 필요성이라는 외부적 동인이 없는 상황에서 임화가 제출한 가톨리시즘 관련 평문은 그의 비평적 시각을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근대 문학의 염세주의와 비애를 극복할 사상적 대안으로 ‘신적 휴머니즘’과 ‘신학 이성적 합리주의’의 가능성을 점치게 된다. 이같은 변모는 임화가 가톨릭 신학자 자크 마리탱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은 낭만주의론과 휴머니즘론으로 이어지는 문단사의 흐름 속에 맥락을 형성해갔다. 담론의 흐름이 휴머니즘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우리 문학사의 가톨리시즘 문학론은 ‘신’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인간’에 대해 사유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1930년대에 가톨리시즘 문학의 창작과 이론 탐구에 열정을 쏟았던 소수의 문인들을 ‘가톨리시즘 문학파’라고 명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주축이 되었던 이동구와 정지용의 경우에도 신에 대한 찬미나 신의 세계에 대한 희구를 문학의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문학과 문학론의 중심은 ‘인간’이었으며, 종교적 이지주의를 통해 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신의 질서 속에 생성된 삶을 탐구하고자 했다. 또한 논쟁에서 산출된 담론 및 그 이후 연관 담론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영성’이 아닌 ‘지성’의 치열한 모색이 있었다. 담론의 마지막 흔적인 임화의 비평이 결국 신이 아니라 신적 ‘휴머니즘’으로 향한 것은 조선의 가톨리시즘 문학론이 인간 중심의 문학론이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 종교의 전통과 정통성이 부재했으나 조선 문단은 치열한 모색을 통해 가톨리시즘 문학 담론을 조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구축해 가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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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제1장 서론 1
1. 연구 목적 및 문제 제기 1
2. 선행연구 검토 8
3. 개념 정의 및 연구의 전제 11


제2장 조선문학의 근대성 논쟁과 가톨리시즘 문학론의 대두 18
1. 󰡔가톨릭 청년󰡕과 1933년 조선 문학장의 역동적 지형 18
2. 제국주의 종교의 정치성과 조선 근대문학의 특수성 논쟁 30
3. 문학적 대응과 근대 가톨리시즘 문학의 출현 44


제3장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의 담론 구조와 이원적 논리 67
1. 가톨리시즘과 마르크시즘의 정치적 이념 논쟁 67
2. 반동예술론과 초현실론의 현실 도피 논쟁 81
3. 문학의 종교성 논쟁과 토마스주의 100


제4장 가톨리시즘 문학 논쟁의 확장과 근대 주체의 인간론 모색 114
1. 외국문학 번역과 정통성 수립의 욕망 114
2. 낭만주의의 반성적 인식과 변증법적 종합 132
3. 인간론의 재건과 신적 휴머니즘의 가능성 145


제5장 결론 161

참고문헌 170
Abstract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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