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16세기 명사(明使) 접대의 형태와 실상 - 1582년 율곡 이이의 원접사(遠接使)ㆍ반송사(伴送使) 활동을 중심으로

The reality and meaning of 16th century Joseon’s Chinese envoy reception - Centering around Yi Yi’s 1582 diplomatic activity

초록/요약

본 논문은 1582년(선조 15)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 황홍헌(黃洪憲), 공과우급사중(工科右給事中) 왕경민(王敬民) 등이 황자의 탄생을 알리는 조사(詔使)로 조선을 방문할 당시에 발생한 조선 내의 접대의 방식과 활동 등을 분석하여 대외관계의 실상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당시 조사 접대와 관련한 내용은 일본 천리대에 소장된 「율곡선생원접사시일기(栗谷先生遠接使時日記)」와 『율곡선생별집(栗谷先生別集)』 「허봉빈접기(許篈賓接記)」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조사 접대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원접사로 제배된 이이는 종사관으로 고경명(高敬命)·허봉(許篈)·김첨(金瞻)을 선발하였다. 원접사 일행은 조사를 맞이하기 위해 의주(義州)에서 대기하였으며, 조사의 도착 이후에는 의주에서부터 서울까지의 호송 업무를 담당하였다. 조사는 서울에서 약 8일 가량을 체류하고 도착경로와 동일한 경로로 명나라로 떠났으며, 반송사 이이 등이 수행하였다. 조사가 조선에서 체류한 기간은 이동 시간을 포함하여 약 36일로 추정된다. 조사가 조선을 방문한 목적은 황자 탄생의 조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조선에서의 활동은 단순히 조서 전달로만 제한되지는 않았다. 원접사·반송사를 포함한 수행인원들과 시문 교류 등을 포함하여 지식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이 나타난다. 이이는 조사들이 작성한 시문에 차운하는 활동 뿐만 아니라, 성리설과 종계변무 등에대한 입장을 교환하면서 원접사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함께 자신이 반송사로서 서북방에서 경험한 현실문제를 정리하여 제출하는 등 관료이자 경세론자로서의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조사의 접대와 이를 중심으로 한 관료들의 활동은단순한 외교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문화 교류와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차원에서전개된 것으로 이해된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