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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테르나크와 릴케: 두 번역물 「책을 읽는 중에」, 「관망」연구 : B. Pasternak and R. Rilke: A Study of Pasternak' Translations of Rilke

B. Pasternak and R. Rilke: A Study of Pasternak' Translations of Rilke

초록/요약

본 연구는 파스테르나크와 릴케의 연관성을 시적 화자의 순수한 지각력과 세계의 전일성 인식이란 릴케 시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양자의 연관성에는 릴케의 새 출발에 바탕이 된, 러시아에서 발견한 자연풍경과 신의 모습이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연구처럼 릴케의 신인식을 무신론, 범신론 레프만 1997: 187, 권온 2009: 132-3. 릴케는 『사랑하는 신 이야기』에서 “신은 교회 의식이나 의례적인 기도를 매개로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거나 그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동일하다”와 같은 범신론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권세훈, “가난과 고독의 예술”, 『릴케전집7』, 책세상, 2000: 449(권온 2009: 133에서 재인용). 이라든지 그만의 고유한 것으로 치부하기에 앞서 그것과 파스테르나크의 신인식과 접촉지점을 엿볼 수 있다. 만물에 영혼을 부여하고 우주를 가족공동체로 본 프란체스코, 그리고 성자적 주인공들 통해 아이와 동물들의 무결점성으로의 회귀를 역설하며 만물을 신이 깃든 단일한 공동체-지상낙원으로 피력한 도스토옙스키의 세계 인식의 길을 걸은 파스테르나크의 우주론적 기독교 및 그리스도의 형제애가 바로 그것이다. 임혜영 2018a: 389-99 & 2018b: 177-204. 릴케가 러시아 여행 후 도스토옙스키 작품 번역과 함께 도스토옙스키에게 몰두한 사실을 상기하라. 세 작가가 프란체스코의 종교성 과 연관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우주관은 공히 “자연과의 닮음을 지향하며” 자신을 세계의 “목소리”나 “삶을 인식하는 도구”로 본 점에서 비롯되기도, 릴케가 천착한 “예술가의 자세”인 프란체스코식 영적 ”가난”-“겸허”에서 비롯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랴트가우스 1977: 373-4, 김재혁 1998: 174, 임혜영 2018a: 223. 프란체스코처럼 위 세 작가가 인식한 세계의 ‘혈족적 합일’은 ‘공교(公敎)적’ 종교의 교리와 별도로, 어려서부터 형성된 그들의 고독을 치유해주는 근원이 됐을 것이다 “신(神)체험에서 ‘러시아식’ 방식에 대한 릴케의 칭송은, 이후로 서구의 교회보다 더 많은 위안과 계몽을 약속해주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싶은 욕구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레프만 1997: 199). . 다만 예술과 종교의 상호제약이란 세계관에 의해 릴케의 신은 더욱 예술에 좌우되는 자유로운 신이다(김재혁 1998: 175). 이점이 릴케의 무의식 영역을 찬미한 파스테르나크나 츠베타예바가 릴케를 진정한 시의 화신, 시 자체로 보게 했으리라. “창조력 있는 개인이 그 자신의 내면에 천착하면 할수록 그가(...) 쓴 책은 그만큼 더욱 (...)집단 전체를 위한 책이 된다. 천재의 무의식의 영역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그 영역을 이루고 있는 건(...) 그의 독자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통행증 외, 30). 파스테르나크의 신이 도스토옙스키의 신보다 의식(儀式)에 얽매이지 않은 더 자유롭고 원초적인 신이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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