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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祖代 振武功臣의 정치적 위상과 군사 활동

초록/요약

인조 2년(1624) 1월 21일 영변에서 일어난 이괄의 난은 도성을 점령하고 흥안군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면서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동년 2월 11일 안현전투에서 도원수 장만을 비롯한 서북장수들이 이끄는 관군이 이괄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괄이 부하에게 참살되고 인조가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면서 반란군에게 도성을 빼앗겼던 초유의 사태는 약 한 달 만에 마무리되었다. 이괄의 난은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정권이 가진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반정 이후 공신과 훈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권 교체가 이루어졌으나 병란을 진압하는데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이괄의 난으로 정사공신 내 무관이 줄어들었고, 변경 방어에는 공백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이괄의 난으로 민심 이반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조는 논공행상을 주도하면서 도성을 수복하는데 전공을 세운 장수들을 정훈공신에, 자신을 호종하거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이들은 원종공신에 녹훈하면서 이들을 ‘振武功臣’이라고 명명했다. 진무공신은 서북지역을 지키던 장수들이 주축을 구성하는 집단으로 대 후금(청) 방어에 있어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특히 정사공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진무원훈 장만을 중심으로 진무공신은 서북지역 군사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진무공신은 방어전략 변화로 인한 부족한 군비와 이괄의 난 이후 계속되는 기찰로 인해 군사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럼에도 진무공신은 후금의 침공을 막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나 방어 전략을 조정에 제시했으며, 그 중 일부는 실제로 반영되었다. 그리고 서․북 지역을 담당하며 쌓은 공적을 바탕으로 진무공신은 중앙 요직까지 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인조대 진무공신은 이괄의 난을 통해 드러난 정사공신 내 무관 세력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후금과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최전선에 해당하는 서북지역을 담당함으로써 책임 있는 공신세력으로서 역할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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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目 次


1. 머리말 1

2. 인조대 초반 정국변동과 진무공신의 녹훈 4
1) ‘仁祖反正’ 이후 정국운영과 군권개편 4
2) ‘李适의 난’과 진무공신의 녹훈 10

3. 진무공신의 구성과 군사 활동 23
1) 진무공신의 구성과 특징 23
2) 진무공신의 위상과 군사 활동 30

4. 맺음말 40

부록 42

참고문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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