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왜관요의 자원 수급
Resource Supply and Demand of Waegwanyo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주제(키워드) Waegwanyo , Operation of Waegwanyo , The movement of Potter's clay , Potters of Joseon , Japanese Requested Porcelain , 왜관요 , 왜관요의 운영 , 도토의 이동 , 사기장 , 일본 구청
- 발행기관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 발행년도 2020
- 총서유형 Journal
- KCI ID ART002563569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왜관요(倭館窯)는 임진왜란 이후 왜관에 설치되어 대마번(對馬藩)의 구청자기를 제작하였던 가마이다. 임진왜란 이후 왜관은 절영도에 설치된 뒤 두모포, 초량으로 이전되었다. 왜인구청등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두모포 왜관 때 처음으로 왜관요를 운영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왜관요는 이전에 왜관 밖에 설치되었으나 이후 왜관 내부로 들어간 것으로 적혀있다. 대마번에서 개요를 요청하는 서계를 보내고, 이를 동래부사가 장계로 경상감사를 통해 예조로 보내며, 예조에서 이 개요를 승인하였을 때 비로소 왜관요가 운영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마번은 왜관요에서 사용될 도토와 약토, 땔감 등을 함께 구청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사기장 및 옹기장도 요청하여 왜관요에서 원활히 도자기를 만들 수 있도록 안배하였다. 자기를 제작하는 인원은 일본에서 구청한 조선인 사기장, 옹기장, 일꾼에 더하여 일본에서 파견된 도공두, 화공왜, 번조왜 등까지 포함되었다. 이들의 임금은 대마번에서 지급했다. 주원료인 도토는 경상도 진주, 하동, 곤양, 경주, 울산, 김해 등지에서 공급하였으며, 대마번에서는 원료의 양, 종류, 생산 지역 등을 선별하여 구청했다. 연료도 이와 마찬가지로, 대마번에서 연료를 구청하면 이를 받아 조선 왕실에서 왜관요에 필요한 연료를 제공했다. 주 연료인 땔감은 부산지역에서 생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경상도 도민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고에서는 왜관요의 운영과 도자기의 생산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여 왜관요 운영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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