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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적 출토 明代 자기에 대한 몇 가지 再考 : Reconsideration of Ming Dynasty Porcelain from the Joseon Dynasty Relic

Reconsideration of Ming Dynasty Porcelain from the Joseon Dynasty Relic

초록/요약

조선시대의 백자문화는 이웃 국가이자 당시 선진 자기문화를 이끌었던 중국과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명과의 도자교류는 조선 초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세종년간에는 명나라 선덕제로부터 많은 도자기가 조선왕실에 전해졌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출토된 명대의 자기는 제작 시기, 생산지, 종류 등 상당 구체적이면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어 당시 명과의 활발한 도자 교섭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조선에 유입된 명나라 자기의 절대 다수는 江西省 景德鎭窯에서 생산된 청화자기이며, 이어 복건성 일대에서 제작된 청화자기 및 오채자기들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출토상황을 살펴보면 몇 가지의 의문점이 따르는데, 그 중 가장 주목되는 상황은 바로 명대 관요품의 미출토이다. 지금까지 한국 출토 명대 자기 모두는 민요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朝鮮王朝實錄』,「五禮儀」등의 문헌기록에서 선덕제가 직접 하사한 그릇이나 禮器 관련 기록, 조선 전기 청화백자에서 명 官樣 요소의 확인 등을 통해 명대 관요품이 전해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와 관련하여 外藩國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조선과 명나라 藩國과의 비교는 당시 관요품 자기 혹은 이에 준하는 상급 민요품의 조선 유입에 대한 일말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 출토 유물의 상당수는 청화백자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청화백자의 양식 및 기형 또한 특정 문양에 한정되어 있어 동시기 중국에서 유행하였던 다양한 문양소재와 기형들의 다채로움을 한국 내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명 중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유상채 자기인 두채, 오채 자기 역시 한국에서는 매우 소량만 출토되었는데, 이는 당시 조선인들의 미감에 의한 결과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 다행히 근래 들어 서울 사대문 내의 주택지에서 상당한 수량의 명대 자기들이 출토 보고되고 있어 과거 기존 연구에서 한 단계 확장되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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