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烈琴相國集』을 중심으로 본 조선후기 가계기록류의 『高麗史』 이해와 해명 방식 : An Understanding and Explanation on the Family Records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Goryeo-sa』 focusing on 『Yeongryeol-geum-sangguk-jip』
An Understanding and Explanation on the Family Records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Goryeo-sa』 focusing on 『Yeongryeol-geum-sangguk-jip』
- 주제(키워드) Geum Ui , 『Yeongryeol-geum-sangguk-jip』 , the Family Records , 『Goryeo-sa』 , the Late Joseon Dynasty , Ahn Jeongbok , 『Dongsagangmok』 , 琴儀 , 『英烈琴相國集』 , 가계기록류 , 『高麗史』 , 朝鮮後期 , 安鼎福 , 『東史綱目』
- 발행기관 고려사학회
- 발행년도 2019
- 총서유형 Journal
- KCI ID ART002440395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조선후기의 가계기록류는 종법의식의 강화 속에서 가문의 世系를 정리하고 그들의 자료를 수집하여 해당 가문의 현창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때 『高麗史』와 같은 역사서에서 확인되는 고위직의 조상은 가문의 역사와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존재였다. 그러나 諸臣傳이 아니라 嬖幸・姦臣・叛逆傳에 立傳되어 있다거나 조선시대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면 이는 자랑이 아니라 흠결이 될 수 있었다. 가계기록류는 가문의 유구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하자가 있는 조상을 포기하지 못했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변명이나 미화를 시도했다. 『高麗史』의 공정성을 부정하는 시각, 『高麗史』 찬자인 정인지나 정도전에 대한 비난, 구체적인 세평에 대한 변명 등이 있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安鼎福・李滉・李廷龜・金宗直 등과 같은 명망있는 인물의 언급으로 뒷받침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에 근거로 삼기도 했다. 『英烈琴相國集』의 방식도 다른 가계기록의 서술 방향과 유사했다. 『東史綱目』의 저자인 안정복에게 서문을 부탁하고 그의 글을 통해 금의에 대한 ‘伸寃’을 시도했다. 안정복은 기존의 『高麗史』에 대해 褒貶 등이 부족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만큼 『高麗史』에 기록된 금의의 행적을 부정해줄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이었다. 안정복은 『英烈琴相國集』의 서문을 통해, 『高麗史』를 穢史라고 평가하고 이황의 언급을 인용해서 기존의 역사 서술을 비난하며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또한 고증을 중요시했던 안정복은 陳澕의 筆記, 『補閑集』의 내용, 김인경의 시를 근거로 금의가 탐욕스러웠으며 최충헌에게 아부한 자라는 세평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진화의 필기는 實紀類로 역시 진화의 행적에 대한 변명을 위해 만들어진 자료였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금의의 고발로 유배를 갔던 그의 문생 皇甫瓘과의 聯句는 유배와 연회가 시간적인 간격이 꽤 있었다는 점을 들어 두 가지 일이 모두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황보관이 복직하고 관료생활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금의와의 화해와 지지가 필요했으므로 유배에도 불구하고 연회에서 금의와 시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해 보았다. 황보관의 숙부인 김인경이 고종 때 고위직의 관료였을 뿐 아니라 그가 금의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지었던 것에서도 김인경・황보관과 금의의 관계가 봉합되었다고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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