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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奎報 排律 硏究(1): 求官活動 時期를 中心으로 : A Study on Lee Gyobo’s Pailu (1)- focused on the period of his seeking a government post

A Study on Lee Gyobo’s Pailu (1)- focused on the period of his seeking a government post

초록/요약

본고는 개별 작가의 배율을 연구를 하는 試析으로, 이규보 배율에 대하여 개관하고, 특히 구관활동 시기 그의 배율에서 보이는 작품세계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 시기 이규보는 「呈張侍郞自牧一百韻」과 「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를 포함하여 33제 40수의 배율을 지었다. 이규보가 구관을 위해 특정한 대상을 정하여 배율시를 지은 것은, 엄격하게 제한된 詩律 속에서 장편을 짓고 기교를 구사함으로써,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데 있었다. 특히 배율의 선택은 讚頌과 自敍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詩體라는 점과 조정에 있는 관리들에게 奉贈하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배율이라는 시체를 통하여 의례적 성격의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전통적으로 배율이 지니는 장점을 충실하게 구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배율은 과거시험에서의 試帖詩와 宮中의 應製하고 奉贈하는 형태에서 抒情化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즉 典雅하고 重厚한 성격의 배율은 盛唐 이후 宋나라를 거치면서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杜甫 이래로 이규보 역시 배율의 시체를 공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역에서 자신의 정서를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이용하고자 했던 의식이 보인다. 이규보는 이러한 개인의 感懷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배율을 지었다. 배율은 首尾를 제외하고 對仗의 詩律을 적용하기 때문에, 閑寂한 感懷를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情景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 배율의 詩體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규보는 전 생애를 포함하여 지은 배율은 84제 124수이며, 사환시기에는 25제 32수, 치사 이후에는 26제 52수를 지었다. 특히 사환시기 이후에는 7언 배율의 비중이 높아지고, 조정에 있으면서 관인들과 배율을 贈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고려시대 고위 관인들이 교유하는 과정에서 배율을 짓는 상황과 그 양상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과제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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