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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유입 淸代 琺瑯瓷器 연구 : A Study on the Falangcai Porcelain Introduced to Joseon during the 18thCentury

A Study on the Falangcai Porcelain Introduced to Joseon during the 18thCentury

초록/요약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조선은 청나라의 관계가 안정되면서 여러 방면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다. 특히 이 시기 북학파에 의해 청나라를 인정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던 바램은 조선 사회의 도자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청대 도자 공예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성장한 소위 법랑채라 불리는 법랑자기는 청 왕조의 적극적 주도 하에 생산 발전된 주력 품목이었다. 이 법랑자기는 18세기 조선에 처음 소개되는 시기로 현재 일부 출토품과 전세품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분명 일정 수량의 법랑자기가 수입되어 소비되었을 조선의 상황에 주목하였으며, 특히 조선에 막 소개되기 시작한 18세기의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였다. 18세기 조선에 유입된 법랑자기는 문헌을 통해 건륭년간(1723-1795) 황제에 의해 「洋磁琺瑯」이 3차례 하사된 기록이 있으며, 최근 경기도 남양주에서 발견된 사도세자의 누이인 화협옹주(1731-1752)묘 및 화유옹주(1741-1777)묘에서도 각 1점씩 18세기 중·후반경에 제작된 법랑자기가 출토된 바 있다. 문헌기록 속의 洋磁琺瑯은 오늘날의 양채자기로 청 황실 어용자기였다. 그러나 옹주묘에서 출토된 법랑자기들은 민가에서 제작된 민요 법랑자기로 추정되며, 그 유입과정 역시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18세기 유물인 옹주묘 출토품을 통해 당시 조선으로의 유입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황실 공예였던 법랑자기는 18세기 중반 이후 상류층을 위한 고급상품에서 일반상품으로 사회적 위치가 전환되었다. 그 결과 민요에서 제작된 법랑자기는 중국 내수시장을 위해 경덕진에서 운하를 통해 중국 시장의 핵심인 북경이나 통주 등지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연경사행을 통해 북경이나 통주를 오갈 수 있었던 창성위 황인점 같은 특권층인 사신들은 제한적이나마 최고급 상품을 접하여 조선에 유입시킴으로서 18세기 후기에 시작된 세계적인 조류에 조선이 합류하게 되는 계기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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