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遺事』 皇龍寺九層塔條에 대한 재검토와 阿非의 출자 : 『三國遺事』皇龍寺九層塔条についての見直しと阿非の出自
- 주제(키워드) 『三國遺事』 , 皇龍寺九層塔 , 阿非 , 于勒 , 新羅 , 羅濟關係 , Samguk-yusa , The pagoda at Hwangnyong Temple , Abi(阿非) , Woo-reuk(于勒) , Silla(新羅) ,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Paekje
- 발행기관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발행년도 2011
- 총서유형 Journal
- UCI G704-SER000013600.2011.36..009
- KCI ID ART001586180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三國遺事』 皇龍寺九層塔條에는 신라가 황룡사구층탑을 세우기 위하여 백제에造塔技術者를 요청하였고, 이에 백제가 아비지라는 工匠을 신라에 파견하여 탑을완성시켜주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러나 그 배경이 되는 640년대의 양국 관계는백제의 신라에 대한 波狀공격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의 백제가 황룡사구층탑 건립을 위하여 신라에 工匠아비지를파견해 주었다는 황룡사구층탑조의 내용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三國遺事』 황룡사구층탑조에는 곳곳에 설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으며, 또한일부에서는 고려 초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조목 중 탑의 연기와 관련된 부분의 서술은 고려 초에 성립된 설화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백제의 아비지 파견 역시도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적 요소 중 하나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같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의 기록에서와같은 ‘大匠百濟阿非’라는 문구는 “大匠의 직을 맡은 백제인 아비”라는 의미이며, 그는 백제 중앙에서 활동하다가 백제 정계의 정치적 혼란을 피하여 신라로 망명한匠人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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