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합’ 전후 동아시아 국제환경과 한인언론의 세계인식 : The Korean Newspapers’ Recognition about the Great Powers Policy under the East Asia International Circumstance in 1909~1910
The Korean Newspapers’ Recognition about the Great Powers Policy under the East Asia International Circumstance in 1909~1910
- 주제(키워드) Ahn Jung-geun , Assassination of Ito Hirobumi ,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 the second Russo-Japanese agreement of 1910 , Shinhangukbo(The United Korean News) , Shinhan-minbo(The New Korea) , 新韓國報 , 新韓民報 , 안중근 , 이토 히로부미 저격 , 제2차 러일협약 , 한일병합 , 공화제
- 발행년도 2010
- 총서유형 Journal
- UCI G704-002002.2010..30.010
- KCI ID ART001645719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본 논문은 열강의 동아시아 정책의 변화과정과 이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대응을 두 축으로 하여 한국병합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한국인의 인식과 대응에 관한 분석 자료로는 당시 통감부 지배하에 있던 국내 신문 皇城新聞과 大韓每日申報, 미주지역에서 발간되고 있던 한인신문 新韓國報과 新韓民報의 보도내용을 비교하였다. 특히 ‘한국병합’이 제국주의시대 열강의 세력 분할의 대표적 사건이었음에 주목하면서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첫째,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을 당시 만주문제를 둘러싸고 열강과 러시아, 일본 사이의 각축과정 속에서 살펴보았다. 둘째, 1910년 7월에 체결된 제2차 러일협약과 ‘한일병합’과의 관계에 대하여 검토했다.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던 두 가지 사건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인식이 어떠하였는가를 다룬 것이라 하겠다. 1909년 10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에 대해 당시 국내에서는 각종 단체가 추도회를 개최하는 가운데 이토의 사망을 애도하는 분위기였고, 언론보도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미주 언론은 안중근을 애국열사로 평가하였고, 한 발 더 나아가 국제법에 입각한 재판절차를 통해 그를 구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중국계 신문에 실린 안중근 관련 기사를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미주 언론의 이러한 보도는 신문지법을 통해서 각종 통제와 발행허가 등을 받는 국내의 언론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09년 초부터 미주지역의 한인 신문은 일진회의 정합방론을 비판하였다. 일진회의 합방 주장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혹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같은 형태의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2차 러일협약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조약타결이 일본에 의한 한국의 병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전망하였다. 한편으로 미주언론은 일본과 미국이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두고 적대적인 관계가 이어질 경우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미일전쟁설과 관련된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일본의 한국병합이 구체화되는 시점이 되자 미주지역 신문은 오히려 망국민으로 전락해버린 현실 앞에서 미주 한인들이야말로 장래 ‘新대한’의 건설주체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공화제에 입각한 정치체제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던 점이 주목된다. 결국 1910년대 들어서 미주한인들의 민족운동은 무형국가론이나 자치정부수립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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