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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食人)’ 주체와 유령들 - 황석영의 『손님』론 : Cannibalistic Subject and the Ghosts - Hwang Suk-Young's novel

Cannibalistic Subject and the Ghosts - Hwang Suk-Young's novel

초록/요약

리얼리즘 소설에 등장하는 유령의 정체는 무엇인가? 데리다에 따르면 유령은 현전으로서의 존재가 은폐하고 몰아내려고 하는, 존재보다 더욱 근원적인 사태의 표현이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요섭의 고향 방문은 한국 전쟁 이후 오십 년 동안 침묵 속에 묻어 두어야만 했던 ‘신천학살사건’이라는 근원적 사태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난 순간’, 즉 남북 이데올로기에 의해 철저히 억압당했던 타자의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다. 요섭은 범죄 이후에 도래하는 두 번째 세대, 즉 유령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결코 상속받을 수 없는 ‘식인(食人)’ 주체의 운명을 타고났다. 서방에서 온 손님들에게 열광했던 전세대의 과오를 바로잡아야만, 그 과오로부터 상속받은 자신의 치명적 외상을 치유하고 자기회복에 이를 수 있는 요섭은 필연적으로 애도 작업을 시도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애도 작업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자아의 상징 구조 안으로 동일화, 내면화하는 것이다. 결국 요섭은 요한의 유령을 몸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을 낯선 타자로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낯익은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은 요섭이 영매가 되어 망자 요한에게 신들림으로써 모든 죽은 자들과 소통하며 한 판 굿을 벌이는 지노귀굿의 서사 구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유령을 불러내고 다시 쫓아내는 ‘콩쥐라시옹(굿)’의 순환 행위 속에는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곧 주체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령은 외부로부터 이식된 타자가 아니라 내 안으로부터 도래하는 타자, 즉 유전(遺傳)된 타자라 할 수 있다. 유전된 타자, 손님은 역사의 어긋난 순간을 바로잡고 죄의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의 체험을 누리기 위한 기회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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