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1907)와 대한제국 언론의 세계인식 ―『皇城新聞』과 『大韓每日申報』를 중심으로― : The Second Hague Peace Conference(1907) and the perception of world by a newspaper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The Second Hague Peace Conference(1907) and the perception of world by a newspaper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 주제(키워드) Hague Peace Conference , the Great Han Empire , the perception of world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 Korean special envoys , the controversy about Protectorate , The Courrier de la Confrence de la Paix , Hwangseong Sinmun , The Daehan maeil Shin , 헤이그평화회의 , 대한제국 , 대한제국기 세계인식 , 한국특사 , 보호국논쟁 , 세계평화회의보 , 대한매일신보 , 황성신문 , Hague Peace Conference , the Great Han Empire , the perception of world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 Korean special envoys , the controversy about Protectorate , The Courrier de la Confrence de la Paix , Hwangseong Sinmun , The Daehan maeil Shin
- 발행기관 고려사학회
- 발행년도 2008
- 총서유형 Journal
- UCI G704-000690.2008..30.007
- KCI ID ART001223147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이 글은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1907)가 태동한 세계사적 배경과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의 평화회의와 특사단 활동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 것이다. 자료로는 당시 주요 언론이었던 『皇城新聞』과 『大韓每日申報』를 이용하였다. 당시 국내 지식인들은 러일전쟁 이후 한국의 위상, 즉 보호국화의 가능성에 대해 주의하고 있었으며, 포츠머스 조약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조약 내용 가운데 조선의 ‘보호 지도 감독’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전개에 대해 논의와 대응책을 모색하였다. 이 시기 보호국화를 둘러싼 논쟁의 주요 특징은 당시 일본국내 국제법학자들의 견해의 영향을 받아 보호국에 대한 인식을 가졌으나, 향후 한국인들이 교육과 실력 양성을 통해 보호국의 지위를 벗어나 대등한 국가로의 자립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 논문은 기존 연구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였다. 첫째 일본 국내의 조선보호국화에 대한 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보호국논쟁이었던 점에 비하여 국내 신문에 전개된 보호국화의 논의는 상반된 것이었다. 둘째로 대한제국 시기 국제법에 대한 인식 수준은 국내 언론의 경우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국내지식인들은 열강에 대한 인식, 특히 미국에 대해서 당시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 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우호적인 인식과 다른 세계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내지식인들은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과 달리 헤이그 평화회의가 회의의 성격상 당시 대한제국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것이며, 서구 열강들도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