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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민족' 개념의 변화-1905~1910년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 The Concept of 'Nation' in 1905~1910-Focused on Korea Daily News

The Concept of 'Nation' in 1905~1910-Focused on Korea Daily News

초록/요약

근대 들어 등장한 각종 신조어 중에서도 ‘민족’은 비교적 출현이 늦었던 개념이다. 한국어 텍스트에서 처음 ‘민족’이라는 표현이 보인 것은 1898년의 일이지만, 비슷‘국가’‘국민’ 등이 곧 왕성하게 쓰이기 시작한 데 비해 , 1905년경까지 ‘민족’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 1894~1910년을 1894~1898년, 1899~1904년, 1905~1910년의 세 시기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에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를 대응시킨다고 할 때 , 독립신문 발간 시기에는 ‘민족’의 용례가 단 한 차례도 목격되지 않을 정도이다 . 황성신문 으로 대표되는 1900년대 초기에는 몇 차례 ‘민족’이라는 말이 보이지만 그 용법은 오늘날의 ‘민족’과 크게 다르다 . ‘민족’이 오늘날의 의미에 접근한 것은 대한매일신보 발간 시기에 와서의 일인데 , 이때도 ‘민족’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었다 . 첫 번째는 단순히 인간 집단 일반을 가리키는 의미였으며, 두 번째는 부족 같은 소규모 인종 집단을 지칭하는 의미였으나 , 이 둘은 1905~1910 년을 통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 이 시기에 가장 일반화되었던 것은 ‘민족’의 세 번째 의미인데, ‘한국 민족’이나 ‘대한 민족’ 등의 용례가 보여주듯 현실의 국가체제와의 연관을 전제하고 있는 용법으로서 , ‘국민’의 의미와 중첩된다 . 이와 유사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 네 번째 용법이 정치적이라기보다 문화적인 ‘민족’의 개념으로 이런 ‘민족’ 개념이 우세하게 ※ 본 논문은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지원에 의해 작성되었음 (KRF-2002-AM1044).근대 초기 ‘민족’ 개념의 변화 189된 것은 일제강점 이후부터다 . ‘민족’이 국가라는 의지적 결합과 다른 자연적 결합임을 함축하고 있는 이 개념은 점차 국가에서 분리된 독자적 이름을 호명하게 되었고 식민지시대와 이후 역사를 거치면서 ‘국가’ 및 ‘국민’에 맞설 수 있는 저항적 자질을 획득하기도 했다. 독립신문 시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역사적 상상력이 황성신문 에 와서 근세사를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대한매일신보 에서는 상고사 중심의 상상력이 만개하는 양상을 보인 것 또한 ‘민족’ 개념의 변화와 결부되어 있는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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