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尤庵 宋時烈의 <寧陵誌文>, 그 撰進의 過程과 表現의 特徵 : A Study of Woo-am Song Si-yeol's Yeongleung Jimun

A Study of Woo-am Song Si-yeol's Yeongleung Jimun

초록/요약

본 논문에서는 尤庵 宋時烈(16071689)의 대표작 寧陵誌文이 찬진되기까지의 전후 사정과 작품에 형상화된 구체적인 표현 양상을 고찰하여 이 작품에 투영된 時代的 어려움 및 이 글이 획득한 미적 성취의 정도를 파악해 보았다. 寧陵誌文은 孝宗(16191659)의 雄志와 偉業을 서술해 나가는 가운데 그 시대의 實相을 증언하고 있다. 이 글은 여의치 못한 시대적 한계 상황에서 복잡한 논의를 거쳐 생산된 작품으로서 효종이 보여주고 있는 여타의 군주와는 차별되는 생애와 위상 및 본 작품에 구현된 표현의 위험성으로 인해 진작부터 논의의 표면에 있었다. 淸의 강압적인 내정 간섭과 압박, 당대 신료들과의 갈등은 이 글의 제진을 꺼리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작품의 찬진을 둘러싼 논의들은 대외적으로는 청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효종의 反淸意識北伐事業을 표현하고자 하는 우암의 의지와 이에 대하여 긍정한 지인들, 그리고 이러한 방식에 懷疑的이며 청과의 현실적 마찰을 꺼려한 당시 관료들과의 대립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尤庵은 이 글의 찬진에 있어서 李景奭의 孝宗行狀에 대한 불만으로 인하여 이 행장을 전혀 수용하지 않은 채 그가 직접 목도한 효종의 군주로서의 생애를 “修德”과 “立政”을 축의 중심에 두어 압축적이며 특징적으로 서술하면서 복잡다단했던 당대의 주요한 사건들을 포괄하였다. 우암은 효종과 宮僚 및 筵臣들과의 대화를 전개하는 가운데 漢武帝에 대한 효종의 긍정적 평가, 金集, 金尙憲 및 巖穴之士 등 북벌과 직결된 인재 등용의 양상, 程朱를 등용치 못한 결과 國勢를 떨치지 못한 宋代에 대한 연민, 북벌의 象徵인 己亥獨對와 “日暮途遠之歎”을 통해 효종의 北伐에 대한 웅지와 그 실체를 여타의 陵誌와는 구분되는 구조와 은미한 언어와 구문을 통해 구현해 냈다.그는 비록 효종의 웅지가 좌절된 점을 한탄하였지만 이러한 悲感을 서술하는 데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氣數의 屈伸으로 인한 난세라는 한계 상황에서도 人倫을 밝히고 大業의 터전을 다져 春秋大一統의 緖業을 계승한 효종의 업적을 百戰創業한 禹임금의 勤勞와 일치화하여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선왕의 志業을 嗣王이 긍정적으로 계승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본 논문에서는 이 작품의 찬진 과정을 살펴본 후 주된 표현의 방식인 은미한 표현의 양상과 그 표현에 내재된 의미의 실체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淸의 현실적 위협과 당대 신료들과의 갈등 속에서 효종의 志業을 사장시키지 않으려는 우암의 의지를 감득할 수 있었다. 우암은 효종의 위업을 서술하는 가운데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웅지에 대해서 무한한 연민과 비감을 피력하였지만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嗣王 현종에 대한 기대를 통하여 효종의 志事가 계승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적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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