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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양로연의 양상과 특징-영정조 시기를 중심으로 : The Aspect and Meaning of the Yang-ro Yun (Party Custom for Senior Citizens) in the Late Chosun period

The Aspect and Meaning of the Yang-ro Yun (Party Custom for Senior Citizens) in the Late Chosun period

초록/요약

조선시대의 국가 지배 이념인 유교는 효를 모든 덕목의 근본이자, 모든 가르침의 출발점으로 여겨왔다. 또 유교의 근본정신인 인仁은 효가 그 바탕이 된다고 했다. 이러한 유교의 근본정신인 효는 특히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으로도 잘 나타나는데, 세종대왕시절부터 있어왔던 양로연 의례가 그것이다. 양로연은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설치하여 경연을 전담하게 하면서, 스승을 공경하는 예절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표현하는 잔치로 임금이 모범을 보이는 잔치였다. 궁중에서 행해진 양로연과 같은 연회는 참석자를 남여로 구분하여 외연外宴과 내연內宴으로 구별하여 행해졌는데,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궁중 양로연에서도 외연外宴의 풍속 양상을 살펴보았다. 특히 가장 자세히 연구되어 있는 세종대의 양로연과 성종조에 완성된 국조오례의에 전하는 양로연을 조선후기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전하는 「화성낙남헌 친림양로연의」와 비교 고찰하고, 기존에 연구되었던 조선후기 양로연의 단편적인 양상 분석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조선후기 양로연 양상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세종조를 거쳐 정비된 예악사상은 성종조의 『국조오례의』와 『악학궤범』으로 그 기틀을 확립하게 되었다. 성종조 연향에서는 세종 때 금지된 여기가 등장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조조에 들어서서는 세종조 이후에 사용되지 않았던 아악이 다시 부활하였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사용되는 아악은 휴안지악 한곡이고 향악도 여민락만과 여민락영 두곡이 사용되었다. 앞의 그림에서 봐서 알 수 있듯이 연향에 여기가 등장하고 있다. 영조조 양로연에서 다시 아악이 부활한 것은 앞의 「영조실록」의 내용에서 살펴봤듯이 세종조의 연향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군신의 정의를 편다’는 뜻으로 어연을 개최할 것을 허락하였는데 이 내용으로 보아서 연향을 베푸는 것도 일종의 정치적 목적으로 세종조의 예악사상과 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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