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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에서 漢字의 受容과 借字表記의 ?遷 : Reception of Chinese Character and the Transition of Usage with Borrowed Letters in Korean Peninsula

Reception of Chinese Character and the Transition of Usage with Borrowed Letters in Korean Peninsula

초록/요약

이 논문은 韓半島에서 漢字의 收容과 그를 이용한 借字 表記의 변천을 살펴본 것이다. 한반도에서 漢文, 즉 중국어와 함께 수입된 漢字는 멀리 衛滿朝鮮 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으나 한국한자음, 즉 東音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中國語와 함께 流入된 漢文은 漢四郡 시대에 統治文字로서 韓半島에 다량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고구려와 백제에서 漢字를 借字하여 自國語를 기록하는 방법도 原始的이지만 이 두 나라에서 발전시켜온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비단 고구려와 백제에서 창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膠着的 문법구조를 가진 중국의 周邊民族들이 자국의 언어를 孤立語의 표기수단인 한문으로 표기하거나 그것을 풀이할 때에 그 글자를 빌려 형태부를 표기하던 古代 北方民族들의 방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 것이다. 新羅에서는 고구려, 백제의 차자표기 방법을 모방하였으나 스스로 自國語에 맞는 차자표기 방법을 발전시켰으며 앞의 두 나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漢文의 普及이 늦었던 신라에서는 自國語의 표기에서 일찍부터 차자의 방법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三國時代에는 한자음이 통일되지 않아서 차자표기의 상호 교환에 많은 혼란이 있었으며 삼국이 鼎立했던 시기에는 各國이 독자적으로 차자표기의 방법을 개발하여 漢文으로 飜譯이 곤란한 自國語의 固有名詞 등을 표기하였다. 신라의 借字표기 자료는 다른 두 나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조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표기 방법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鳥瞰할 수가 있었다. 신라에서는 초기에 고구려, 백제의 차자 방법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나 점차 독자적인 표기법을 개발하였으며 특히 薛聰은 釋讀口訣의 방법을 集成하여 普及함으로써 차자표기 방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최근의 연구 결과, 즉 小林芳規(2002, 2003) 등에 의거하여 이러한 釋讀口訣 방법이 일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게 되었다.이러한 주장은 고구려와 백제가 고유명사의 표기 등에서는 차자표기를 발달시켰지만 석독구결과 같은 차자표기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前提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현재까지 이 두 나라의 자료에서 釋讀의 痕迹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며 일본에 전해진 訓点表記의 방법이 백제나 고구려의 것이 아니라 신라의 것일 수 있음을 念頭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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