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극장 개념의 분화와 공간의 정치성 연구
- 주제(키워드) 극장 , 소극장 , 이동극장 , 마당 , 살롱드라마 , 모노드라마 , 계몽극 , 음악극 , 전통의 현대화 , 마당극 , 까페 떼아뜨르 , 에저또 소극장 , 극단 자유 , 극단 에저또 , 극단 가교 , 김정옥 , 이병복 , 방태수 , 이근삼 , 이승규 , 김상열 , 김지하 , 채희완 , 임진택
-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이상우
- 발행년도 2020
- 학위수여년월 2020. 2
- 학위구분 박사
- 학과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 원문페이지 279 p
- UCI I804:11009-000000127839
- DOI 10.23186/korea.000000127839.11009.0000950
- 본문언어 한국어
- 제출원본 000046023068
초록/요약
1960~1970년대는 한국연극계의 역동성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근대시기부터 이어지는 사실주의 극에 대한 반성과 연극의 양적, 질적인 성장을 이룩하며 실질적인 세대교체를 이룩한 시기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운 극장들이 존재했다. 1960년대 이전까지 한국연극계에서 극장은 일반적으로 명동의 국립극장처럼 프로시니엄 무대를 갖춘 대극장을 의미했다. 소극장 원각사가 전소되고 난 뒤 서울 시내의 정식 극장으로는 명동의 국립극장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동인제 극단의 활성화로 인해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극장의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물론 정부가 1973년에 장충동에 거대한 국립극장을 신축했지만 다른 산하 단체와 나누어 써야만 하는 형편은 개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립극장의 부족한 공간을 나누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주도 의지, 각종 협단체로 대표되는 이익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 비싼 임대료 때문에 새로운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곤 했다. 다행히 1962년에 최신 설비를 갖춘 드라마센터가 건립되었지만 이 극장을 주로 사용했던 유치진, 이해랑, 김동원 등은 새로운 극장 형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1970년대 유덕형과 안민수가 등장할 때까지 드라마센터는 연극계의 새로운 변화로부터 한 걸음 뒤쳐져 있어야만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극장은 언제나 부족했다. 여기에 당시 새롭게 등장한 반사실주의 연극 사조, 전통연희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극장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가중시켰다. 가령 김정옥과 이근삼으로 대변되는 서구 유학파 연극인들은 구세대의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반사실주의 연극을 시도했는데, 이런 경우 대극장 무대는 공연에 있어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시 김정옥이 주로 공연했던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인물의 수가 적고 무대 배경이 구체적이지 않은 부조리극 계열의 작품들이었다. 따라서 무대가 지나치게 큰 대극장보다는 적은 수의 등장인물들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 있는 소극장이 필요했다. 한편 4‧19 혁명 이후 전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데,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통연희를 직접 배우고 향유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정부는 전통적인 것을 민족적인 것으로 흡수, 체제를 강화하려는 목적 하에 전통예술 보존에 나섰는데, 이것은 앞서 설명했던 움직임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전승보다는 보존에 입각한 것이었고, 보존의 의미를 충분히 존중한다 하더라도 공연의 빈도가 너무 낮았다. 반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전통예술에 대한 열기는 학생들이 재야 세력으로 성장해나감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담아내는 예술 양식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통연희가 공연되었던 마당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정립과 활용 시도들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를 배경으로 1960~70년대에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분명한 프로시니엄 무대를 갖춘 대극장에서 소극장, 이동극장, 마당의 형태로 극장에 대한 개념이 분화되었다. 극장이 부족할 때 연극인들이 가장 쉽게 생각 할 수 있었던 해결책은 다방이나 강당 같은 대안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들은 대개 한 쪽에 얕은 단을 놓아 무대를 꾸몄고 객석은 무대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당시 이런 대안 공간에서의 연극을 살롱드라마라고 칭했는데,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유행으로 퍼져 나갔다. 대안 공간들의 출현은 대극장 중심의 극장 개념 전환에 큰 기여를 했다. 처음부터 극장으로 계획된 건물이 아니어도 괜찮았고 500석이나 되는 많은 객석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까페 떼아뜨르는 이런 개념 전환이 소극장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고 비슷한 시기 나타난 에저또 소극장은 소극장의 형태가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소극장에서 공연된 작품들은 연극의 새로운 경향들을 두루 반영하고 있었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좁아진 만큼,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은 새로운 연극적 미학을 갖고 있었다. 대형 프로시니엄 무대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았던 반사실주의 계열의 외국 작품들이 까페 떼아뜨르에서 활발히 소개되었고 이것이 한국 창작 희곡에도 영향을 주어 모노드라마의 붐을 일으켰다. 아울러 기존의 극장에서 공연되기 힘들었던 전통연희 공연 역시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새로운 문화 소비자로 등장한 젊은이들은 이런 소극장의 주된 관객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에저또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는 극장에서 입체적인 극장으로 변모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배우의 움직임과 무대가 만들어내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강조되었다. 에저또 극단과 함께 작업했던 극작가 윤조병, 윤대성, 김용락 등은 변화하는 극장 공간과 에저또의 미학적 방향성에 맞춰 상징성이 강한 희곡을 창작했고 반사실주의 극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이동극장 역시 일제 말의 순회공연이나 소인극운동의 역사 덕분에 극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극인들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형태의 극장이었다. 이미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기자들, 과거 순회공연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연극인들도 이 시기 이동극장의 형식으로 지방 관객들과의 만남에 나섰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의 개발에 나섰던 것은 극단 가교였다. 가교의 이동극장은 계몽극의 지방순회공연과 천막극장의 형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96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가교는, 서울에서 극장을 대관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자 천주교 재단의 도움을 받아 계몽극과 성극의 순회공연에 나섰고 이후에는 원추형 모양의 천막극장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동극장은 전국의 강당, 교회, 교도소의 마당, 야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펼쳐졌는데, 대개 간단한 배경 막을 설치한 간이 무대를 한 편에 마련해놓고 공연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동극장의 무대는 관객의 일상과 밀접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독특한 관극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공연 도중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는 사람들, 천막을 뚫고 들려오는 바닷가의 소음은 관극을 방해한다기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트러트리며 이동극장만의 공간성을 극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동극장의 관객들 중에는 연극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동극장의 공연들은 대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들로 이루어졌고 후원 해주는 주체에 따라 계몽적 메시지의 전달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관극 본연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하는 효과가 컸다. 가교의 계몽극, 천막극장의 대중극들이 한국 뮤지컬 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공연 공간으로서의 마당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지만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마당극 공연 공간으로서의 마당이었다. 이 공간은 언뜻 보면 이동극장의 야외무대와 비슷해 보이지만, 마당극 양식의 원리를 내제한 공간으로 접근했을 때는 확연한 차이를 갖는다. 마당극은 한국 전통연희와 저항적 연극운동이 만나 만들어진 독특한 장르다. 그러다 보니 공연 공간으로서의 마당에도 전통연희적 특징과 연극적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곤 했다. 특히 1960~1970년대에는 이 장르가 완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다양한 공연 장소가 혼재하는데, 가령 실내 강당에서부터 완벽한 야외 원형무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가 마당으로 지칭된다. 아울러 서울 대학가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던 마당은 1970년대 말에 이르면 지방의 도시, 농촌으로까지 전파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공연 공간으로서의 마당을 논할 때 중요해지는 것은 관객과의 관계다. 이동극장의 무대가 관객의 일상 속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창작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에 비해 마당에서는 관객이 보다 주도적인 입장이 된다. 곧 관객들이 일상과 가까운 곳에 펼쳐진 극장에서 공연을 보게 되는 것은 마당과 이동극장이 같지만, 마당의 관객들은 무대에서 자신들의 일상과 직접 관계가 있는 내용을 다루는 공연을 보게 되고 그것은 이후의 시위로 이어지거나 집단의식을 고취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아울러 관객이 직접 공연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완벽한 지위 역전이 가능할 정도로 높은 개방성을 갖는 것은 마당만의 특징이었다. 1960~1970년대 극장 개념의 분화는 소극장, 이동극장, 마당과 같은, 기존의 극장과는 다른 형태의 극장 출현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첫째, 당시 새롭게 대두되고 있었던 창작 경향과 맞물리면서 한국 연극의 성장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극단 자유의 <대머리 여가수>, 오태석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와 같은 작품들은 대극장 무대에서 벗어났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들이었다. 아울러 전통적인 담론의 대두로 한국적인 연극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마당극의 성장, 동시대 세계 연극의 흐름과 공명하는 천막극장의 출현, 대중극의 형식 실험으로 얻은 성과 역시 기존의 대형 프로시니엄 무대에서는 이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둘째, 연극이 관객의 일상에 가깝게 다가감으로써 새로운 관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적 호기심에 충만한, 그리하여 새로운 문화에 대한 소비를 아끼지 않았던 대학생 관객들은 소극장의 주요 관객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연극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던 지방 관객들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찾아온 이동극장 무대에서 연극을 즐기게 되었다. 나아가 마당은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공론화하는 장으로서 기능했는데, 이후 재야 지식인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문화운동세력과 이들의 지지기반이 되는 일반 민중들이 만나는 장소로 발전해나갔다. 셋째,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세대의 성장을 위한 터전이 되기도 했다. 이미 기성 연극인들이 자리를 점하고 있는 연극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신인들은 상대적으로 활동 반경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국립극장이나 드라마센터, 혹은 각종 회관과 강당의 대관 기회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신인들의 수는 많았고 기회는 너무 적었다. 대신 이들은 새로운 극장을 개척해서 자신들만의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극계 세대교체는, 이 새로운 극장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정치’를 새로운 세대가 연극계 내의 기존 권력 구조를 재배치하려는 시도로 정의하고 이것이 새로운 극장 공간을 중심으로 실현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극장 개념의 분화는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만의 극장을 확보하고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1960년대 이전까지 한국 연극계의 극장은 명동의 국립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대형 프로시니엄 실내극장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해방 이전부터 이러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던 기성 연극인들이 주축을 이룬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연극인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새로운 연극인들은 소극장, 이동극장, 마당의 형식으로 극장 공간을 확장시켰고 새로운 미학의 작품들을 통해 관객을 만났다. 곧, 기존의 사실주의 작품들이 프로시니엄 무대와 객석 사이의 먼 거리를 이용해 극적 환영을 조장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의 관극을 유도했다면, 새로운 극장에서 극적 환영은 무너지고 현실이 끊임없이 틈입하는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배우와 관객은 관찰의 주체와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곧 새로운 극장 공간이 갖고 있었던 정치성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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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1
1.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1
2. 연구사 검토 12
3. 연구 대상 및 방법 16
Ⅱ. 극장 개념의 분화 배경 27
1. 원각사의 소실과 대극장 중심의 획일적인 극장 환경 27
2. 미학적 실험의 증가와 극장 형식의 변화 요구 43
3. 관객 확대를 위한 극장의 역할 57
4. 정치적 발언대로서의 극장 64
Ⅲ. 소극장의 정착과 확산 74
1. 대안 공간의 등장과 민간소극장의 발전 74
1.1 살롱드라마의 유행과 대안 공간의 등장 74
1.2 새로운 문화 소비자로서의 관객 성장 80
2. 까페 떼아뜨르와 소극장 시대의 개막 85
2.1 민간소극장 역사의 시작 85
2.2 소극장 미학의 발전 95
2.3 전통에 대한 관심과 향유 104
3. 에저또 소극장과 극장 형식의 실험 111
3.1 입체적 극장으로의 변천사 111
3.2 언어의 파괴와 신체성의 부각 120
3.3 젊은 세대의 구심점으로서의 극장 129
Ⅳ. 이동극장과 연극 저변 확대 139
1. 이동극장의 확장 배경과 양상 139
1.1 이동극장의 역사와 확장 139
1.2 정부 주도의 새마을연극운동 149
2. 계몽극의 전국순회공연 154
2.1 이동극장의 목적성과 연극 저변의 확대 154
2.2 일상으로서의 연극과 야외무대 161
2.3 극 형식의 실험과 오락성의 강화 167
3. 천막극장과 새로운 관객의 개발 174
3.1 천막극장의 형성과 활동 174
3.2 극적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극장 181
3.3 음악극의 활용과 대중적 요소의 확대 188
Ⅴ. 마당과 관객 수행성의 강화 196
1. 마당극의 발전 배경과 수행적 공간의 의의 196
1.1 사회적 제의와 참여자의 수행성 196
1.2 탈춤 붐과 마당의 대두 202
2.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마당극의 형성과 실험 208
2.1 마당극의 형성과 전개 208
2.2 열린 판의 의미와 관객 공동체의 형성 214
2.3 마당의 형식적 실험과 희곡의 변화 222
3. 마당과 실생활의 연계 232
3.1 마당극과 문화운동의 접목 232
3.2 농촌현장에서의 마당극 변형과 마당의 특징 238
3.3 노동문제를 다루는 마당극과 관객의 참여 247
Ⅵ. 결 론 2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