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양상 연구 : 김억ㆍ김소월ㆍ김영랑ㆍ백석 시를 중심으로
초록/요약
이 논문은 1920~30년대 근대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을 각 시기를 대표하는 김억, 김소월, 김영랑, 백석 시를 중심으로 고찰하면서, 그것이 지니는 시사적(詩史的) 의미를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선과 같은 식민지 약소국 출신인 예이츠가 보여준 세계적 위상과 식민지 아일랜드의 시인으로서 보여준 시적 노정은 근대 시인들이 예이츠를 수용하는 주요한 내적 동기가 되었다. 식민지의 역사적 상황에서 창출된 예이츠의 시적 특징은 조선의 근대시에 ‘대응’될 수 있는 중요한 전범으로 인식되면서 적극적인 수용이 이루어졌다. 2장에서는 1920년대 시단의 예이츠 수용 양상을 김억과 김소월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1절에서는 1920년대 번역된 예이츠 시와 이와 관련된 학술적 논평들을 개관하면서 당대 시단에 구축된 예이츠의 문학적 함의를 고찰하였다. 이 시기 예이츠의 시는 영시나 서구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려는 기획 속에서 번역되었으며, 예이츠의 시에 대한 학술적 논평은 대체로 영시단을 소개하는 단평에서 부분적으로 서술되었다. 예이츠는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주로 조명되었는데, 특히 아일랜드의 정서와 감정을 다룬 신비주의적 특징이 강조되었다. 2절과 3절에서는 각각 김억과 김소월 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 김억과 김소월의 예이츠 수용 양상은 김억이 번역한 예이츠 시를 기반으로 수용되었다. 이 논문은 김억이 주로 번역했던 예이츠의 연시와 이상향을 염원하는 시편을 토대로 김억과 김소월 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을 고찰하였다. 동일한 예이츠 시의 특징을 수용했으면서도 김억과 김소월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예이츠 시를 변용하고 있었다. 김억은 예이츠 연시에 나타난 감각적인 이별의 구성방식과 실체화된 연인의 재현 양상을 창작시에 수용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김억의 시는 실연의 애상성을 미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김억 시에 나타난 예이츠 연시의 수용의 의의는 다른 그의 연시에서 발견되는 이별의 작위성과 실재성이 결여된 ‘님’의 형상을 실재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억 시에 나타난 또 다른 예이츠의 수용 양상은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다룬 시편에서 나타났다. 김억은 식민지 현실의 번민과 고뇌를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예이츠의 시에 구현된 이상향의 염원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독자적으로 변용하였다. 김억 시에서 이상향은 막연하고 불명확한 미지의 세계로 구현되었다. 김억의 시에서 이상향은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데서 파생되는 ‘설움’이 극대화되는 공간으로서, 이처럼 성취할 수 없는 이상향의 동경에는 식민지의 정서가 투영되어 있었다. 김억은 이상향의 염원을 다룬 예이츠 시의 주제의식과 식민지적 정서를 수용함으로써 식민지의 시대인식을 표출할 수 있었다. 김소월은 실연을 형상화한 예이츠 시의 구성 방식과 표현 등을 차용하면서도 조선적 정감을 지닌 제재와 배경을 활용하여 이를 새롭게 변주하였다. 이러한 실연의 조선적 변용은 실연의 의미를 조선적 문맥에서 실체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김소월은 실연의 의미를 개인적 감정에 귀속시키지 않았다. 식민지의 상황 속에서 김소월은 예이츠 연시에 나타난 설움의 정조를 민족적 감정으로 승화시켰다. 이 밖에도 김소월은 신비롭고 안온한 공간으로 구축된 예이츠 시의 이상향을 조선적 정경을 보여주는 향토적 이상향으로 변용하였다. 예이츠 시에서 이상향이 현실과는 단절된 신비로운 이상적 공간으로 제시되었다면, 김소월 시에서 이상향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향토적 공간으로 구현되었다. 김소월 시에 나타난 향토적 이상향의 염원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는 김억의 시에 비해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마련하면서, 삶의 터전을 상실한 당대 조선 민족의 비극성을 보여주었다. 김소월은 켈트적 이상적 세계를 동경하는 예이츠 시를 창조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식민지의 시대인식을 표출하고 있었다. 3장에서는 1930년대 시단의 예이츠의 수용 양상을 김영랑과 백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3장에서는 1920년대와는 변별되는 예이츠의 수용 배경 및 양상을 고려하여, 번역시의 일차적인 수용 외에도 이들이 식민지의 문학 담론 안에서 예이츠의 문학적 특징을 어떻게 인식하면서 그들의 창작방법으로 이를 창조적으로 수용했는지를 살폈다. 1920년대 김억과 김소월의 예이츠의 수용이 김억이 번역한 예이츠 시를 매개로 이루어졌다면, 1930년대 김영랑과 백석의 예이츠의 수용은 1920년대의 수용 양상과는 다른 국면에서 전개되었다. 이 시인들의 예이츠의 수용은 그들이 번역하거나 접했던 예이츠 시 외에도 당대 조명되었던 예이츠와 관련된 문학 담론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김억과 김소월 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이 예이츠 시와 표현 및 주제상의 직접적인 친연성을 보이는 ‘번역시 대 창작시’의 대응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면, 김영랑과 백석 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은 번역시와 더불어 이 시기 담론의 장에서 조명된 예이츠의 시적 특징 및 문학적 지향성 등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1절에서는 1930년대 번역된 예이츠 시와 이와 관련된 담론의 전개양상을 살피면서 1930년대 시단에 구축된 예이츠의 문학적 함의를 개괄적으로 검토하였다. 1930년대는 1920년대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예이츠 시가 번역되었다. 또한 예이츠의 시 번역과 더불어 예이츠에 대한 학술적 담론 역시 크게 부흥하였다. 특히 예이츠는 식민지 아일랜드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각되면서 이와 관련된 시편의 번역과 학술적 논평들이 융성하였다. 2절에서는 김영랑의 예이츠 수용 양상을 고찰하였다. 이 논문은 김영랑의 예이츠의 수용 배경을 저변을 살피기 위해 시문학파의 문학의 장에서 예이츠의 정체성을 규명하였다. 시문학파는 서정시인으로서 예이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순수시를 지향하는 그들의 문학적 모색 과정에서 예이츠를 전범으로 삼고 있었다. 김영랑의 위시로 한 시문학파의 예이츠 수용은 식민지 현실에서 서정시의 본령을 지녔던 예이츠를 통해 ‘서정시’의 위상을 넓히려는 문학적 야심과 연동되어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이 논문은 김영랑 시에 나타난 물 이미지로 구현되는 ‘순수’에 대한 동경을 그가 번역한 예이츠 시 「The lake isle of Innisfree」와 관련해 살피면서, 김영랑이 예이츠의 시적 특징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식민지의 시대인식을 표출하는 시적 방법론을 구축했는지를 고찰하였다. 김영랑의 예이츠의 수용은 1920년대 김억, 김소월이 예이츠 시와 직접적인 친연성을 보이는 시행이나 모티프를 차용하여 수용한 것과는 대별되었다. 김영랑은 이러한 표면적인 수용을 벗어나 식민지 현실에서도 순수 서정시를 고수했던 예이츠의 시적 지향성을 수용하고 있었다. 특히 김영랑은 그가 선호했던 물 이미지로 이루어진 「The lake isle of Innisfree」의 시적 특징을 수용하여, ‘순수’의 표상으로서 물 이미지를 다면적으로 변주하였다. 김영랑의 시에서 식민지 현실로부터 순수성이 보존된 이상향은 “내마음”의 세계로 구현되었다. “내마음”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이러한 특징은 현실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김영랑의 의식적 고투과정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서 “내마음”에 투영된 물 이미지는 감각적으로 마음의 순수성을 재현하고 있었다. 이러한 ‘순수’의 동경은 궁극적으로 ‘순수시’에 대한 염원으로 귀결되었다. 김영랑 시에 나타난 예이츠 수용의 의의는 순수시의 본령을 지키면서 식민지의 시대인식을 미학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시적 방법론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발견되었다. 3절에서는 백석의 예이츠 수용 양상을 살폈다. 백석이 예이츠를 수용했던 문학적 지반을 살피기 위해 이 논문에서는 「「죠이쓰」와 愛蘭文學」에 기술된 예이츠의 창작기법과 당대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과 관련해 조명되었던 예이츠의 문학적 특징을 고찰하면서 당대 조선에서 문예부흥운동이 지녔던 조선적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이를 토대로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담보한 풍속적 소재를 통해 백석이 민족적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적 전략을 예이츠의 창작기법과 관련하여 고찰하였다. 예이츠가 고대 아일랜드의 신화, 민담, 전설 등에서 아일랜드의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했다면 백석은 그가 경험한 풍속의 세계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하고 있었다. 백석 시에서 풍속적 소재는 그의 전략 아래 다양하게 선택되고 배치되었다. 『사슴』 시편에서 풍속적 소재는 유년 시절의 평화로운 삶의 정경을 재현함으로써 식민지의 현실과는 대비되는 공간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사슴』 이후 시편에서 풍속적 소재는 조선 민족의 정체성이 부여되면서 민족 전체를 표상하였다. 또한 ‘북방’ 정서를 다룬 시편에서 풍속적 소재는 웅혼한 역사를 이끌었던 과거의 주체자로서 선조들의 강인한 민족적 정체성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웅장했던 민족적 정체성의 환기는 당대 조선 민족이 처한 식민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소멸되어가는 민족적 정체성을 복원하기 위한 시적 전략으로 볼 수 있었다. 백석은 민족적 정체성을 복원하기 위한 예이츠의 창작기법을 창조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식민지의 시대 인식을 독특한 창작방법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근대시의 형성기를 관통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예이츠의 시와 문학적 지향성은 다면적으로 근대시에 수용되었다. 특히 근대시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김억, 김소월, 김영랑, 백석은 예이츠의 시적 특징과 문학적 지향성을 창조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식민지의 시대인식과 연동된 근대적 시적 방법론을 마련하고 있었다. 김억, 김소월, 김영랑, 백석 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은 근대 시인들이 서구시를 일면적으로 모방하거나 차용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 관점에서 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변용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more목차
제1장 서론 1
1. 연구 목적 1
2. 연구사 검토 6
3. 연구 대상 및 방법 12
제2장 1920년대 시단의 예이츠 시 수용 17
1. 1920년대 예이츠의 시 번역 및 담론의 전개 17
1) 예이츠 시 번역의 양상 17
2) 예이츠 시에 대한 학술적 논평 21
2. 김억의 수용 양상 25
1) 실연의 감각적 형상화와 님의 실재적 재현 32
2)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동경 40
3. 김소월의 수용 양상 50
1) 실연의 조선적 변용과 민족적 확장 53
2) 향토적 이상향의 염원 64
제3장 1930년대 시단의 예이츠 시와 담론의 수용 69
1. 1930년대 예이츠 시의 번역 및 담론의 전개 69
1) 예이츠 시 번역의 양상 69
2) 예이츠 시에 대한 학술적 논평 79
2. 김영랑의 수용 양상 83
1) 시문학파의 예이츠 조명과 순수시의 지향 83
2) 순수의 동경과 물 이미지의 변주 96
3. 백석의 수용 양상 110
1) 「「죠이쓰」와 愛蘭文學」의 번역과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의 조선적 가능성 110
2) 풍속적 소재의 차용과 민족적 정체성의 복원 127
제4장 결론 142
참고문헌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