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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 神功紀 49年條의 군사작전의 성격과 시기

초록/요약

韓·日 양국 사이에는 여러 역사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 중에서도 古代時期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 중 하나가 소위 ‘任那問題’이다. ‘任那問題’란 4-6세기에 이르는 시기동안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韓半島의 南部地域을 支配하고 그 支配機構로서 ‘任那日本府’를 두었다는 日本學界의 ‘倭의 韓半島 南部支配論’을 이르는 말이다. ‘任那問題’ 혹은 ‘倭의 韓半島 南部支配論’이 정확한 명칭이지만 이 문제에 관한 通說의 歸着點이 ‘任那日本府’라는 機構에 있으므로 일반적으로는 ‘任那日本府問題’라 불린다. 이와 관련하여 韓·日 양국에서는 그 동안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任那問題’관련 연구들 중 상당수가 韓日倂合의 역사적 根據를 마련하기 위해 19세기 말 日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때문에 韓·日 양국은 모두 내셔널리즘의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이 일본역사교과서 문제나 韓·日 간의 정치적 현안과 같은 비학문적인 문제들과 얽히면서 ‘任那問題’는 여론의 논쟁거리로 비화된 적도 많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정적인 대립이 학문적 연구를 앞지르기도 하였다. 따라서 ‘任那問題’는 이러한 민족감정의 대립, 특히 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日本書紀』에 나타난 ‘任那問題’는 그 내용에 따라 크게 任那支配의 시작, 任那의 經營, 任那의 復興 노력, 任那 問題의 終結이라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에서 ‘任那問題’의 核心은 任那支配의 시작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任那支配의 시작이 이후의 모든 단계들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즉, 任那支配의 시작의 사실여부에 따라서 任那의 經營, 任那의 復興 노력, 任那 問題의 終結 등의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任那問題’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任那支配의 시작에 대한 이해가 先行되어야 한다. 이러한 任那支配의 시작을 보여주는 史料가 바로 神功紀 49年條의 記事이다. 神功紀 49年條에는 倭가 新羅를 격파하고 伽倻7國 및 忱彌多禮를 평정한 뒤 百濟까지 왜의 西蕃으로 삼았다는 일련의 군사 작전이 기술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神功紀 49年條는 4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왜가 任那를 직접 지배하고 百濟와 新羅를 간접 지배했다는 ‘韓半島 南部支配論’, 즉 ‘任那問題’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神功紀 49年條를 다룬 종래의 연구들은 기사에서 보이는 일련의 군사 작전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즉 작전의 목적, 작전의 출발지, 작전의 시기 등 기본적인 사실을 도외시 한 채 ‘주체’가 백제인가 왜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神功紀 49年條의 군사 작전을 좀 더 치밀하고 명확하게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군사 작전의 주체 내지는 神功紀 49年條의 실체를 밝히고, 궁극적으로는 ‘任那問題’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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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1
1. 연구의 목적 1
2. 연구의 현황과 분석 방법 4
Ⅱ. 神功紀 49年條의 분석 11
Ⅲ. 군사 작전의 과정과 성격 17
1. 伽倻7國과 彌多禮 平定의 주체 17
2. 5邑이 自然降服한 대상 23
3. 군사 작전의 성격 25
Ⅳ. 군사 작전의 시기 28
1. 2周甲 인하와 3周甲 인하 28
2. 6세기 사실의 소급 31
Ⅴ. 맺음말 35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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