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1392년~1638년) 對유구 관계의 변화와 인식
- 주제(키워드) 조선 대외관계
-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 지도교수 권내현
- 발행년도 2013
- 학위수여년월 2013. 2
- 학위구분 석사
- 학과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 원문페이지 57 p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korea/000000038485
- 본문언어 한국어
- 제출원본 000045744003
초록/요약
조선과 유구의 관계는 1392년부터 시작되어 양국의 자문교환을 통한 간접교류가 단절되는 1638년까지 약 250년 동안 이어졌다. 250년 동안 이어졌던 조․유 관계에는 총 3번의 변화가 찾아왔으며, 이러한 변화에 따라 조․유 관계를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조․유 양국의 직접 사신 교류시기이다. 이 시기는 조선이 건국되는 1392년부터 유구가 통일되는 1429년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동안을 가리킨다. 이 시기 유구는 물론 조선에서도 사신을 파견하여 조․유 양국 간의 상호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는데, 유구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조선은 피로인 송환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교류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단계는 일본 중개 교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조선과 유구의 교류관계에 일본이 개입하였으며 유구 사신 夏禮久가 대마도 상선에 편승해서 왔던 1431년부터 1526년까지 95년 동안을 일컫는다. 조선에서는 유구 사신의 임무를 맡아 조선에 온 일본인을 국왕사의 예로 접대하였다. 조선의 이러한 후대 때문에 일본인이 유구 사신의 임무를 거절하지 않고 도맡아 왔던 것이며, 이후 유구 사신을 사칭하는 위사가 생겨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15세기 후반 조정에서 위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구 사신을 사칭한 자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접대하였던 것은 대마도와의 관계가 악화될까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조정에서 유구에 대한 회의적인 인식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유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노력은 세 차례에 걸친 유구 사신과의 문답, 네 건의 표류기, 이러한 기록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를 통해 나타났으며, 특히 표류기는 조선인이 유구에 장기간 표류하면서 보고 체험한 것들을 토대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공적인 문헌을 통해 알 수 없었던 유구의 다양한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다. 이러한 유구 관련 정보들을 토대로 조선에서는 외교정책을 보완․수정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단계는 중국 중개교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유구의 조선으로의 사신파견이 단절된 1527년 이후부터 조․유 양국의 자문교환을 통한 간접교류가 단절되는 1638년까지 111년 동안을 일컫는다. 1527년 이후로 유구에서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았던 이유는 명의 해금정책의 완화로 인한 일본․중국 상인의 해외무역 독점과 서구세력의 아시아 침투로 인해 유구가 중계무역국으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조․유 양국이 중국을 통하여 교류가 이어졌던 것은 표류민 송환이라는 공통된 문제가 있어서였다. 조․유 양국은 표류민을 송환하면서 자문과 예물도 교환하였는데, 자문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조선과 유구가 명을 중심으로 한 조공질서에 속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자문교환을 통한 교류는 1644년 명이 멸망한 이후 단절되었는데, “명”이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면서 조선은 유구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more목차
Ⅰ. 머리말 1
Ⅱ. 양국 직접 사신 교류 시기(1392년~1429년) 유구 인식의 形成 4
Ⅲ. 일본 중개 교류 시기(1430년~1526년) 유구 인식의 變化 15
Ⅳ. 중국 중개 교류 시기(1527년~1638년) 유구 인식의 停滯 39
Ⅴ. 맺음말 48
참고문헌 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