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딜타이의 역사 이해 : 역사와 이성의 통합으로

초록/요약

1. 문제 제기 딜타이는 전 일생을 통해 그의 철학에서 역사 이해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가능성을 정립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역사의식의 조건과 본질을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이성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음을 다음과 같이 결의에 찬 표현으로 기술하고 있다. “역사의식의 최종적인 귀결까지 추적해 보면, 그때 화해할 수 없어 보이는 대립이 생겨난다. 모든 역사적 현상의 유한성 ... 사물의 연관에 대한 인간적 파악의 모든 종류의 상대성이 역사적 세계관의 가장 마지막 단어가 된다. ...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보편타당한 인식을 위해서 사고의 요청과 철학의 분투가 시작된다. 자연과학과 철학이 아직 해방시키지 못했던 마지막 구속으로부터 역사적 세계관이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몰락시키려고 위협하는 확신들의 무질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는가? 나는 이와 관련지어진 연속된 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의 일생을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10년에 저술하였던 그의 마지막 저작의 제목인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Der Aufbau der geschichtlichen Welt in den Geistewissenschaften)』에서도 잘 드러난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바로 그의 철학의 시작과 끝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철학적 사유가 역사 이해로부터 시작되었고, 또한 그가 말하는 해석학의 모든 내용들도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방법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딜타이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적 시도를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정신과학을 정립하는 데서 찾고자 하였다. 이는 1883년 미완의 저서인 『정신과학 입문(Einleitung in die Geisteswissenschaften)』에서 자연과학과 구별된 정신과학의 토대를 확립하려던 시도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딜타이는 새로운 이성 비판으로서 ‘역사 이성 비판(Kritik der historischen Vernunft)’을 기획하였다. 그는 랑케와 같은 독일의 역사가들에게서 형이상학적 사유로부터 역사 이론을 자유롭게 하려는 훌륭한 노력들을 보았지만, 또 한편 인식론적 근거를 결하고 있는 역사주의가 상대주의의 위험에 노출됨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칸트가 영국의 회의주의적 경험론에 상대하여 대륙의 이성주의 전통 속에서 자연과학의 비판적 인식론을 정립한 것과 같이, 한 세기 후에 역사 연구를 위한 비판적 시도를 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동시에 헤겔의 형이상학적 관념론과 콩트의 실증주의의 양 극단을 피하는 것이기도 했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뉴턴 이래 자연과학의 학문적 가능성을 정초하는 작업이었는데, 이때 칸트의 순수 이성은 자연에 관계하는 이성이었다. 딜타이는 자연과학적 방법과 전적으로 구분되는 정신과학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 순수 이성과 구분되는, 또는 순수 이성에 대비되는 역사 이성을 요청했다. 순수 이성이 자연과학의 대상 및 그 대상 인식의 가능성에 관계하는 이성이라면, 딜타이의 역사 이성은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에 의해 창조된 사회와 역사를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 정신과학이란 바로 사회적-역사적 현실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며, 이러한 정신과학에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역사적 현실성을 구성하고 인식하는 능력인 역사 이성에 대한 비판적 탐구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므로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토대를 설정하기 위해서 역사 이성 비판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딜타이의 '역사 이성'이라는 표현에서 중요한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와 ‘이성’이다. 이 두 개념은 물론 서로 대립되고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적이고 상대적인 사건들로 이뤄지며, 이성은 그 상대적인 사건들을 넘어선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딜타이가 표현한 ‘역사적 이성’의 비판(Kritik der historischen Vernunft)에서도 ‘이성’이 ‘역사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칸트가 추구했던 그의 ‘순수 이성’도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 안’의 이성임을 말한다. 블라이허는 “칸트의 비역사적인 접근이 하나의 역사적인 특수한 학문인 뉴턴의 역학을 지식의 본보기로 보게 하였고 그로 인해 그의 뿌리가 분명히 계몽주의에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딜타이에 의하면, 이성은 “역사 안에서(in der Geschichte)”의 이성이며, 또한 역사도 이성과 함께(mit)하는 역사이다. 즉 딜타이는 자신의 ‘역사 이성 비판’을 통해 역사와 이성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딜타이는 그의 학문적 토대를 역사의 “비합리적 현사실성(die irrationale Faktizität)”에 기초해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학문적 출발점인 역사성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성을 파악하려는 이성의 역할을 또한 요청한다. 그는 모든 역사적 현상이 유한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역사에서 상대성의 의식이 생겨나고 있음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성의 작용을 통한 보편적인 것에로의 확장을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이 말은 ‘역사 이성’이라는 두 얼굴 중에서 ‘이성’이라는 한 얼굴은 초역사적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을 위한 보편타당한 과학을 요구하고 있고, 다른 한 얼굴인 ‘역사’는 역사적 상대성이라는 인간적 삶의 엄연한 현실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갈등적 상황 속에서 딜타이는 어떤 탈역사적 이성주의자도, 비합리주의자도 아닌, 그의 온 관심이 오직 역사와 이성의 통합에 있었던 역사 사상가임을 증시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표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딜타이에 대한 연구에는 그의 학문적 입장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있었다. 특히 에르마스(M. Ermarth)가 잘 지적했듯이, 딜타이는 자주 반 개념적인 직관과 감정, 그리고 원초적인 체험에 의존하는 신비주의나 또는 비합리주의의 옹호자로서 잘못 그려져 왔다. 물론 그는 자신의 당대에서도 철학자로서보다는 의미 있는 정신사가, 또는 문학사가로서 더 알려졌고, 철학자로서의 딜타이는 그의 사후 백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 하나는 딜타이가 많은 분량의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형태로서 출간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반 권의 사람(man of the half-volume)” 또는 “위대한 미완성자(the great fragmentist)"라는 수식이 그를 따라 다녔고 나아가 “그는 서론을 쓴 자가 아니라 서론에서 서론으로 끝낸 자”라는 식의 노골적인 비난도 있었다. 사실 그의 중요한 저서들은 미완성의 작품으로,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단편적인 형태로만 출간되었다. 그러나 그의 줄기차고도 역동적인 작업에도 불구하고 계획한 작업들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학문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딜타이는 자신의 철학을 “전통적인 학문 체계를 탈피하여 통합적(학제적) 연구”를 통해 추구했다. 즉 “철학적 반성이란 모든 학과 학부 구분으로부터 해방된 정신과학들이 이루어야만 하는 연구 계열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부분이 전체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그의 해석학적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태도로 인해 딜타이는 무엇보다도 당대의 사상적인 흐름의 변화와, 그로 인한 철학적인 접근법에 대한 재평가에 대단히 민감하였다. 실제로 그의 저술들의 내용을 보면, 그의 관심이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자연과학, 문화, 정치학, 문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폭 넓은 관심은 인간이 영위하는 총체적 삶인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접근의 특수함이 후학들에게 딜타이의 학문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출판된 저술들과 다른 많은 근거 자료들의 상태가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집들이 미쉬(Misch), 그레투이젠(Groethuysen), 노흘(Nohl)과 리터(Ritter) 등 그의 충실한 후학들에 의해 출판되었다. 1914년을 시작으로 하여 전집 발간이 계속되었고 최근 2000년에 제23권,『일반 철학사:1900-1905 강의(Allgemeine Geschichte der Philosophie: Vorlesungen 1900-1905)』까지 출판되었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 왔다. 특히 하이데거는 딜타이가 그의 친구, 요크 백작과 주고받은 서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딜타이의 본래적인 학문적 이해를 밝히려고 하였다. 하이데거는 당시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딜타이의 모습을 “정신사, 특히 문학사에 대한 섬세한 해석자로서, 또한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설정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때 이〔정신: 필자 첨가〕과학의 역사 그리고 마찬가지로 심리학에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그 전체를 상대주의적 삶의 철학 안에 침잠하도록”한 인물로서 묘사하였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평이 당시 세간에 알려져 있는 딜타이에 대한 상일 뿐, 오히려 이러한 평가가 딜타이의 본 모습을 가린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역사 문제에 대한 온전한 접근이 딜타이의 노력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딜타이의 철학을 인간 현존재의 존재론적 인식을 위한 "역사성의 발아점(Keimpunkt der Geschichtlichkeit)"이라고 해석한다. 딜타이가 그의 정신과학의 대상으로 삼은 세계는 “인간적-사회적-역사적 삶(menschlich-gesellschaftlich-geschichtliches Leben)”이다. 그리고 이때의 삶은 곧 역사적 삶이다. “삶은 그 재료의 측면에서 보면 역사와 같은 것이다. 역사의 모든 지점에 삶 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관련이 있는 모든 종류의 삶으로부터 역사가 구성된 다. 역사란 단지 하나의 연관을 형성하는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되는 삶이 다.” 그러므로 딜타이의 삶은 항상 역사적으로 이해되는 개념(Leben ist ein immer nur geschichtlich zu verstehender Begriff)이다. 특히 리터(Ritter)는 딜타이의 삶이란 곧 역사이며 동시에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물음은 삶과 역사에 대한 물음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딜타이가 그의 정신과학에서 구성하고자 하는 역사적 세계는 관찰이 아니라 체험에 기초한다. 사회적, 역사적 삶은 인간의 체험들로 구성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적 방식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정신과학은 삶을 이론적 관찰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삶을 삶 자체로부터 이해하고자(das Leben aus ihm selber verstehen zu wollen)” 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그러므로 딜타이는 자연과학적 모델에 따라 획득된 경험 법칙적 지식에 국한된 근대의 주지주의적 인식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자연과학은 17세기 초 케플러, 갈릴레이, 베이컨 그리고 데카르트 등의 공헌에 의해 “자연의 질서의 합법칙적 인식으로서(als Erkenntnis der Ordnung der Natur nach Gesetzen)의 수학적 자연과학”으로 형성되었다. 자연과학은 귀납과 실험을 통해 현상들을 계량화함으로써 규칙성을 정립한다. 그 이후 자연과학은 18세기에 이르러 로크, 버클리, 흄, 달랑베르(d'Alembert), 람버트(Lambert)와 칸트에게 인식론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근대의 자연과학적 방법은 주관으로부터 대상을 분리시킨 상태에서 법칙적인 질서를 발견하는 “관찰의 관점”을 취했기 때문에 삶 자체의 매순간의 흐름을 붙잡아 고정시켜 살아 있는 체험을 파괴한다. 즉 삶의 전체성이 상실된다. 따라서 정신과학적 탐구 방식은 애당초 자연과학의 탐구 방식과 상이하다. 또한 이 세계는 자연을 탐구하는 순수 이성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세계도 아니다. 정신과학의 대상인 사회적, 역사적 세계는 삶의 실천에 의해 창조된 세계이기 때문에 단지 표상하고, 사유하는 인식 주관만이 아니라 “의욕하고, 느끼고, 표상하는 본질(wollend, fühlend, vorstellende Wesen)”인, 즉 “전체적 인간(ganzen Menschen)”, "우리 본질의 전체성(Totalität unseres Wesens)"에서만이 이해될 수 있다. 딜타이는 이러한 접근을 “이제 우리는 정신과학뿐 아니라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거대한 사실에 접근해 가면서 이 사실에 대한 과학적 조작의 배면으로 들어가서, 이 사실을 자신의 생생한 상태로 파악해야만 한다.”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역사적 세계가 우리의 합리적 사유만으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것은 딜타이가 분명 그의 철학적 출발점을 역사적 삶, 즉 역사의 유한성에서 발견하고 있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역사가 곧 정신과학의 학문적 근거로서의 현사실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이다. 즉 역사 안에 존재하는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역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바로 이 문제가 딜타이의 온 학문적 작업, 철학 전체를 이끌어간 근본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딜타이는 역사의 영역 안에 이성의 복귀를 요청한다. 이 부분을 크게 강조하면, 가다머가 보는 것과 같이 딜타이를 이성주의자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딜타이가 복귀를 요청한 이성은 순수한 사유 능력으로서의 이론 이성이 아니라 역사 이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딜타이는 역사성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고 끝까지 역사성 속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딜타이의 과제는 역사와 이성의 사이의 갈등, 어떻게 보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그 자체 모순된 시도이다. 그것은 역사와 이성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딜타이에 대한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일관되게 그의 철학적 의미를 역사와 이성의 모순적 갈등을 통합하는 데에서 찾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리델(M. Riedel)은 “딜타이의 의도는 정신과학의 인식론적-방법론적 정초나 정신과학의 역사적-미학적 의식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근대과학의 성립에 의해서 분리된 이론지와 실천적 삶의 확실성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고 보았으며, 체클러(Zöckler)는 “정신과학의 자기반성, 정신과학의 입문, 정신과학의 해석학, 삶의 해석학: 이와 같은 다양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근본 의도는 정신과학에 사회적 실천의 범위 속에서 차지하는 학문적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에르마스(M. Ermarth)도 또한 딜타이가 그의 시대의 위기를 사고(思考)와 삶, 즉 이론과 실천 사이의 근본적인 불일치에서 발견하였으며, 이 불일치가 불러오는 문제, 즉 “삶이 없는 사고(life-less thought)”뿐 아니라 “사고 없는 삶(thought-less life)”을 극복하는 것을 바로 그의 학문적 과제로 삼았음을 지적한다. 또한 블라이허(J. Bleicher)는 딜타이가 역사 이성 비판에서 논리와 삶의 이중성을 정신과학적 체계를 통해 극복함으로써 서양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학문과 삶,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였다고 설명한다. 특히 무얼(Jos de Mul)은 이론과 실천이 상호 배타적인 반대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인간을 이해하게 해주는 두 계기라고 말한다. 이것은 일면 모든 이해관계를 벗어나 있는 객관적 지식을 열망하면서도, 또한 실천적 이해관계의 구속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인간의 모순적 양면성을 나타낸다. 특히 그는 칸트가 이성을 순수하고 비시간적으로 이해한 반면, 딜타이가 역사적 이성을 강조한 것은 근본적으로 철학적 탐구가 역사적 탐구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뜻한다며, 딜타이가 인간 존재의 역사성을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지금까지의 딜타이 철학을 상대적 역사주의나 혹은 탈 역사적 이성주의로서 해석하는 일면적 수용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딜타이가 의도했던 전체적인 학문의 관심이 바로 이와 같이 역사와 이성의 매개 문제였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의 학문적인 체계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보이고, 그가 그 문제들을 어떻게 자신의 정신과학론을 통해 전개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분명히 역사와 이성은 서로 대립된 개념들이다. 역사는 시간 안의 인간적 삶으로서 합리적일 수만은 없지만, 또한 인간의 이성은 피할 수 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합리적 사유를 전개한다. 이 두 측면의 모순적인 관계가 곧 인간의 한계, 딜타이의 철학적 문제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19세기의 딜타이가 당면했던 철학적 문제이기 전에 역사 속에 던져진 인간 현존재의 외면할 수 없는 본래적인 모습임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운명지어진 시간과 공간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 즉 상대적인 역사적 세계 속에 구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구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이성은 “상대성에 대항하여 창조하는 힘의 연속성”을 발휘하도록 한다. 이것을 딜타이는 “역사의식”으로서 이해했고, “인간 해방을 위한 마지막 걸음”이라고도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역사적 현존재가 본래적으로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와 이성의 문제가 우리에게 갈등을 고조시키는 항상 힘든 상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 속에서 충분히 상호 보충될 수 있고, 인간 실존의 보다 나은 가능성을 위해 상호 헌신할 수 있는 통합적 대상임을 이해하게 된다.

more

목차

목 차


Ⅰ. 서론 1
1. 문제 제기 1
2. 본 연구의 구성 10

Ⅱ. 딜타이의 역사 이해를 위한 배경적 논의 16
1. 근대 이후 역사 문제의 출현 16
2. 정신과학의 출현과 딜타이의 과제 22
2.1 계몽주의와 역사학파 22
2.2 헤겔과 독일 관념론 26
2.3 랑케의 역사 이해 30
2.4 정신과학에서의 딜타이의 과제 32

Ⅲ. 딜타이의 역사 이해 35
1. 삶의 범주 이해 35
1.1 실재적 범주 36
1.2 삶의 흐름과 관련된 범주들 38
1.2.1 시간성(Zeitlichkeit), 의미, 가치, 목적 40
1.2.2 의미와 뜻 45
1.2.3 부분과 전체, 연관, 구조, 발전, 본질 47
2. 역사와 체험 51
2.1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방법의 특징 52
2.2 통일적 의식 현상으로서의 체험 53
2.3 기술 심리학 57
3. 역사와 표현 62
3.1 표현에 대한 세 가지 구분 62
3.2 역사의 객관화 65
3.3 딜타이의 객관 정신 67

3.3.1 헤겔의 객관 정신에 대한 딜타이의 비판 67
3.3.2 심리주의라는 비판에 대한 딜타이의 대응 69
3.3.3 인식의 공통적 매개로서의 객관 정신 71
3.3.4 객관 정신의 의미 74
4. 역사와 이해 75
4.1 객관 정신과 기초적 이해 76
4.2 고차적 이해 78
4.3 고차적 이해로서의 추체험 80
4.4 딜타이의 역사성 84

Ⅳ. 딜타이 철학의 수용 과정에 대한 논의 87
1. 하이데거의 긍정적인 딜타이 수용 87
2. 가다머의 비판적인 딜타이 수용 93
3. 역사에 대한 딜타이, 하이데거 그리고 가다머의 학문적 연관성 고찰 101

Ⅴ. 결론
딜타이 역사 이성의 특징과 한계 104

참고문헌 112
ABSTRACT 117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