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 忠烈王代 哈丹軍의 侵攻과 그 對應
- 주제(키워드) 哈丹 老的 忠烈王 羅裕 世祖 薛闍干 萬戶 都指揮使 竹田 西京 燕岐
-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이진한
- 발행년도 2010
- 학위수여년월 2010. 2
- 학위구분 석사
- 학과 일반대학원 한국사학과
- 세부전공 한국중세사
- 원문페이지 45 p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korea/000000021578
- 본문언어 한국어
- 제출원본 000045582111
초록/요약
13세기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등장하였던 몽골은 忽必烈(世祖)에 의해 국호를 ‘元’으로 개칭하였으며, 원 제국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한편 인접국이었던 고려는 약 30여년간의 대몽전쟁을 종식하면서, 원과 왕실혼인 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 고려의 정세는 원의 요구에 의해 일본 원정에 2차례나 동원되는 등 전쟁 체제가 지속된 상황이었다. 당시 고려의 군사력은 무신정권이래 공적인 군사조직인 상비군이 무신집정이라는 개인에게 예속되어 점차 약화되었고, 대몽전쟁이후에도 대외전쟁을 치를 수 없을 만큼 그 기능이 떨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충렬왕은 원 황제의 부마라는 위상을 배경으로 왕권 및 군사력 강화를 시도하였다. 국왕은 2차 일본원정을 계기로 원 세조에게 일곱 가지의 요청사항을 전달하여 이를 승인받았는데, 여기에는 독자적인 호구조사권, 고려국왕의 만호 임면권, 자체적인 군지휘권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고려군은 군사확보 및 작전수행에 있어 元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다분히 元의 입장에서 일본정벌을 위한 임시적이고 제한적인 상황하에 고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고려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 보강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2차 일본 원정이후 고려는 원과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군사력 강화와 국내 안정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1287년 斡赤斤家 乃顔을 수장으로 하는 동방왕가가 원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고, 내안에 이어 哈赤溫家 哈丹이 송화강 유역에서 흑룡강 유역에 걸쳐 원에 장기간 항전하였다. 이러한 여파는 고려에도 파급되었다. 1291년 정월 합단군이 고려로 남하하면서, 고려 왕조는 대몽전쟁이후 또 한 번의 전쟁을 맞이하였다. 고려를 침공한 합단군은 부대를 두 개로 나누어 동․서북계를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忠州를 거쳐 마침내는 燕岐縣에까지 이르렀다가 麗元聯合軍에게 격퇴당했다. 결국 1292년 압록강에서 원 토벌군에 의해 합단이 사망함으로써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 전쟁에서 고려가 합단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원군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전쟁 초기 고려 관군의 적극적인 반격과 지방민에 의한 거점 중심의 항전도 전쟁 승리의 주요한 요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대외전쟁에 대한 고려의 국가적 대응 의지가 확고하였으며, 일본 원정이후 고려의 군사력 강화가 가져온 성과로 파악할 수 있다.
more목차
Ⅰ. 머리말 1
Ⅱ. 충렬왕대 고려의 군사력 강화와 외적의 대비 5
1. 충렬왕대 고려의 군사력 강화 과정 5
2. 합단군 침공이전 고려의 대비 13
Ⅲ. 합단군의 침공 발발과 고려군의 대응 양상 18
1. 서북 방면의 전황과 고려군의 반격 18
2. 동북 방면의 전황과 지방민의 항전 25
3. 여원연합군의 공세와 합단군 퇴각 29
Ⅳ. 맺음말 34
參考文獻 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