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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셰비키 지도자들의 권력 전략에 나타난 정치 문화 - 1917년 7월~10월 : The Political Cultre of Menshevik Leaders Reflected to Their Power Strategies : From July to October of 1917

  •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 발행년도 2007
  • 학위수여년월 2007. 2
  • 학위명 석사
  • 학과 대학원 사학과 서양사전공
  • 식별자(기타) DL:000018552154
  • 서지제어번호 000045346806

초록/요약

1917년 혁명에서 멘세비키가 패배는 필연적이었는가. 1917년 7월-10월 멘셰비키 지도자들의 권력 대안의 변화 과정은 멘셰비키가 패배할 운명이었으며 망설임, 주저함, 갈팡질팡 속에서 사건의 급류에 휩쓸려 갔다는 기존의 평가를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멘셰비키 지도자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한 가운데 발발한 무장 시위로 인해 조성된 “7월 위기”를 겪으며, 부르주아 정당인 입헌민주당과 연립(coalition)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당내 우파인 방어주의자들과 중도파는 자신들의 정치 문화적 전통에 묶여 연립 전략을 고수했다. 혁명적 방어주의 진영의 지도자인 쩨레텔리의 카리스마와 정치가로서의 설득력은 해체될 수도 있었던 혁명적 방어주의 진영을 다시 한번 결속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편, 연립에 처음부터 반대했던 멘셰비키 국제주의 분파 지도자 마르토프는 1차 연립 정부가 붕괴한 직후 “동질적 민주 정부”라는 새로운 권력 대안을 제시했다. 기존 멘셰비키 정치 문화에 내재한 농민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혁명에서 농민의 잠재력에 착목한 이 안은 대단히 광범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토프는 레닌처럼 자신의 전략을 중심으로 독립적이고 확고한 정치 운동을 조직하거나 동원하지 않았다. 만약 쩨레텔리가 아니었으면, 마르토프의 안이 멘셰비키 내에서 더 빨리 다수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었다면 레닌의 무장 봉기가 아닌 다른 권력 대안이 역사의 시험대에 놓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레닌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 기반을 안정화시켰던 1917년 후반기에 펼쳐진 정치적 상황은 얼마든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은 1917년 후반기에 존재했던 비결정성(indeterminancy) 속에서 멘세비키의 정치적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 구조적 요인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것은 멘세비키가 수십년에 걸쳐 형성·발전시켜온 중장기적 정신적 구조로서 그들의 정치 문화의 특성과 규정력이다. 정치 문화 연구는 인간 집단의 정치적 행동 이면에 놓인 여러 가지 심리적, 정서적, 이론적인 지향, 전제, 태도 등에 주목한다. 멘셰비키의 서구화론자(westernizer)로서의 면모와 이로부터 파생된 도시주의(Urbanism)적 경향이 낳은 농민에 대한 편견, 역사의 발전 법칙에 대한 결정론적 신념, 혁명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집단의 정치적 의식 및 조직화 수준에 의해 정치 권력의 문제는 마치 다양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함수식과 같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 정치 권력의 독립적 힘에 대한 과소평가와 같은 멘셰비키 정치 문화의 요소들은 쩨레텔리나 마르토프가 혁명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정치적 활동과 선택을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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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머 리 말
Ⅰ.멘셰비키의 정치 문화
1.멘셰비키 정치 문화의 형성 :1903-1917
2.1917년 멘셰비키 분파들의 형성― 방어주의,혁명적 방어주의,국제주의
Ⅱ.멘셰비키 지도자들의 권력 전략의 변화 :1917년 7-10월
1.새로운 대안의 모색
2.혁명적 방어주의 진영 내의 균열
3.멘셰비키 분파들 내 충돌의 격화
Ⅲ.패배의 원인
1.가능했던 다른 단기적 선택
2.중장기적 요인으로서 멘셰비키의 정치 문화
맺 음 말
부 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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